대기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대기를 시원하게 바꾸고, 누군가는 그렇게 더워진 대기를 떠안는다. 폭염 불평등은 자원이 고르게 나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의 몫을 가져가는, 수탈의 이야기다.
월간 명랑사회 VOL.02 · 특집 · 명랑사회연구소
들어가며 — 같은 35도, 다른 여름
올여름도 35도를 넘겼다. 같은 숫자다. 그러나 그 35도는 모두에게 같은 35도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35도는 리모컨을 누르면 끝나는 불쾌감이다. 거실의 공기가 26도로 내려가고, 더위는 창밖의 풍경이 된다. 누군가에게 같은 35도는 창문을 열어도 들어오지 않는 바람이고, 천장 아래 고이는 열이고,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방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35도는 죽음이다.
폭염은 자주 '날씨'로 이야기된다. 기상특보가 내려지고, 물을 자주 마시라는 안내가 나오고, 한낮의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권고가 반복된다. 마치 더위가 모두의 머리 위에 공평하게 내리쬐는 자연현상인 것처럼. 그러나 죽음의 명단을 펼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위는 평등하게 내리쬐지만, 죽음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세 개의 숫자에서 시작하자.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2025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의 결과다. 그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4,460명, 전년보다 20.4% 늘어 2018년 이후 가장 많았다.[1] 추정 사망자는 29명. 이 숫자들은 더위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위험이 어디로 쏠리는가이다.
사망자의 62.1%가 60세 이상이었다. 환자의 26.0%가 단순노무종사자였고, 전체 발생의 79.2%가 실외에서 일어났다 — 실내의 3.8배다.[1] 노인, 육체노동자,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 더위는 이 세 자리에 정확히 내려앉는다. 우연이 아니다. 나이와 일과 집과 소득이 만든 구조를 따라, 더위의 치명성은 분포한다.
이 글은 그 분포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한 가지 불편한 질문에 도달하려 한다. 더위가 누군가에게 더 치명적인 것이 단지 그가 약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를 더 위험한 자리로 밀어 넣었기 때문인가.
1장 · 대기는 누구의 것인가
에어컨을 켠다. 방이 시원해진다. 여기까지는 사적인 거래처럼 보인다. 전기요금을 낸 사람이 시원함을 산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깔끔한 교환. 정말 그런가.
이 장은 한 발 물러서서 묻는다. 그 시원함은 어디에서 왔고,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대기는 공유재(commons)다. 공유재란 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고 모두가 함께 쓰는 자원을 말한다. 바다, 강, 그리고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누구도 대기에 울타리를 치고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 도시의 공기는 에어컨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쓰는, 본래 평등한 자원이다.
그런데 여기에 균열이 생긴다. 에어컨은 방을 시원하게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에어컨은 방 안의 열을 방 밖으로 옮기는 기계다. 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내에서 사라진 열은 실외기를 통해 거리로 나온다. 내 방이 시원해진 만큼, 정확히 그만큼, 바깥 공기는 뜨거워진다. 공유재인 대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열을 버린 것이다.
경제학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여 두었다.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다. 어떤 행위의 비용이 시장 거래를 거치지 않고 제3자에게 떠넘겨지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피구(A. C. Pigou)는 한 세기 전에 이미 이를 지적했다. 공장이 매연을 내뿜으면 그 비용은 공장 장부에 적히지 않는다. 대신 인근 주민의 폐와 빨래와 건강에 청구된다. 사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에 괴리가 생기고, 그 괴리만큼 누군가가 대가를 대신 치른다.
에어컨도 마찬가지다. 에어컨 사용자가 내는 전기요금은 시원함의 사적 비용이다. 그러나 거리로 쏟아진 열, 더워진 도시, 잠들지 못하는 옆집의 밤 — 이 사회적 비용은 요금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거래에 끼지 못한 제3자, 곧 에어컨을 켜지 못한 사람이 그 비용을 떠안는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여기서 세 번째 개념이 등장한다.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이다. 1972년 OECD가 채택하고 리우선언 16조가 재확인한, 환경정책의 가장 오래된 상식. 부담을 일으킨 자가 그 비용을 진다는 원칙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정책기본법 제7조는 명문으로 규정한다. "자기의 행위 또는 사업활동으로 환경오염의 원인을 야기한 자는 그 오염의 방지와 회복·복원의 책임을 진다."
원칙은 분명하다. 열을 버린 자가 그 열의 책임을 진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한다. 열을 버린 자는 시원한 방에서 책임을 면제받고, 열을 버리지 못한 자가 더워진 거리에서 죽는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이 간극이, 이 글의 비판적 동력이다.
이제 그 간극의 한가운데로, 에어컨이라는 기계의 내부로 들어가 보자.
2장 · 에어컨은 무엇을 하는가
에어컨은 열을 없애지 않는다. 옮길 뿐이다.
이 한 문장이 이 글의 심장이다. 우리는 에어컨이 더위를 '제거한다'고 느끼지만, 물리학은 그런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에어컨이 하는 일은 실내의 열을 끌어모아 실외로 토해내는 것뿐이다. 더 정확히는, 그 열을 옮기느라 전기를 쓰고, 그 전기 자체가 또 열이 되므로, 에어컨은 실내에서 덜어낸 것보다 더 많은 열을 바깥에 내놓는다.
그렇게 버려진 열은 두 갈래로 도시에 청구된다.
첫 번째 경로는 눈에 보인다. 실외기다. 한여름 골목을 걷다 보면 벽마다 매달린 실외기들이 뜨거운 바람을 토해낸다. 바깥 공기가 35도일 때 실외기에서 나오는 공기는 약 60도에 이른다는 것이 현장의 측정이다.[2] 한 대로는 미미하다. 그러나 도시는 수백, 수천 대의 실외기가 동시에 돌아가는 공간이다. 그 열이 좁은 골목과 고밀도 주거지에 쌓이면, 거리의 공기는 사람이 만든 열로 한 겹 더 데워진다.
두 번째 경로는 보이지 않는다. 발전소다. 에어컨을 돌리는 전기는 어딘가에서 만들어진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전력 1킬로와트시(kWh)에는 평균 0.417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따라붙는다.[3] 화력발전이 전기를 만드는 동안 발전소는 열과 탄소를 배출하고, 그 탄소는 다시 지구 전체의 기온을 끌어올린다. 도심에서 누리는 시원함의 대가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발전소 굴뚝과 미래의 대기에 청구되는 것이다. 시원함은 이곳에서 누리고, 비용은 저곳에서 치른다 — 외부효과의 교과서적 정의다.
이 두 갈래의 열이 쌓이는 무대가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빽빽한 건물과 인공열로 인해 도심이 주변 교외보다 더 뜨거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기상청 관측에 따르면 여름철 도심과 교외의 표면온도 차이는 평균 2~4도에 이른다.[4] 그리고 결정적으로, 열섬은 밤에 더 강해진다. 낮 동안 빨아들인 열을 도시가 천천히 토해내는 데다, 밤에는 대기의 냉각을 막는 조건이 겹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등장한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진은 에어컨이 내뿜는 폐열이 도시 기온을 실제로 얼마나 끌어올리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Salamanca et al., 2014,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Atmospheres). 결과는 분명했다. 낮에는 폐열의 영향이 지표 부근에서 거의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되자, 일부 도심에서 에어컨 폐열은 평균 기온을 1도 이상 끌어올렸다.[5] 한여름 열대야의 1도는 가볍지 않다. 그 1도가 누군가에게는 잠들 수 있는 밤과 잠들 수 없는 밤을 가른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가장 잔인한 고리가 닫힌다. 더워진 밤은 다시 에어컨을 부른다. 사람들이 더 많은 에어컨을 켜면 더 많은 폐열이 나오고, 도시는 더 뜨거워지고, 그래서 또 에어컨을 켠다. 연구진이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라 부른 악순환이다. 냉방이 더위를 부르고, 더위가 냉방을 부른다.
그런데 이 악순환에는 결정적인 비대칭이 숨어 있다. 폐열을 내놓는 자와 그 폐열을 떠안는 자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어컨을 켠 사람은 시원한 방 안에서 자신이 만든 열을 느끼지 못한다. 그 열은 창밖으로, 골목으로, 에어컨 없는 옆집의 창문으로 흘러간다. 행위자와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외부효과의 본질이며, 동시에 이 글이 '수탈'이라 부르려는 것의 정체다.
행위자와 피해자가 일치한다면 — 즉 자기 행위의 결과를 자기가 떠안는다면 — 책임은 자연히 분담된다. 그러나 행위자와 피해자가 다를 때, 비용을 절반씩 나누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부담을 일으킨 자가 더 많이, 사실은 거의 전부를 져야 한다. 4장에서 우리는 이 규범적 결론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전에, 피해자가 정확히 누구인지를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
3장 · 누가 떠안는가
에어컨이 도시를 데우고, 그 열이 에어컨 없는 사람에게 흘러간다면, '에어컨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연히 흩어진 개인들인가, 아니면 특정한 자리에 모여 있는 집단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가구에너지패널조사(HEPS) 13차 원자료를 직접 분석했다. 전국 6,311가구를 가구가중치로 보정해 약 2,177만 가구의 모습을 추정한, 우리나라 가구의 냉방 실태에 관한 가장 정밀한 자료 중 하나다.[6] 결과는 통념을 뒤집는다.
먼저 흔한 오해 하나를 걷어내자. "가난한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는 생각이다.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월소득 200만 원 미만 가구의 에어컨 보유율은 88.3%였다. 600만 원 이상 가구는 94.6%.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보유 자체는 저소득층에서도 이미 보편적이다. 가구당 보유대수로 봐도 0.96대 대 1.22대 — 격차는 1.27배에 그친다. 에어컨은 더 이상 부자의 물건이 아니다.
진짜 격차는 다른 곳에 있다.
같은 가구들의 연간 에어컨 사용량을 추정해 비교하면, 월소득 200만 원 미만 가구는 292kWh, 600만 원 이상 가구는 629kWh를 썼다. 격차는 2.15배. 있느냐의 차이는 1.27배인데, 켜느냐의 차이는 2.15배다. 가난한 집에도 에어컨은 있었다. 다만 켜지 못했을 뿐이다.
왜 못 켜는가. 답은 단순하다. 에어컨의 진짜 비용은 기계값이 아니라 전기요금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한 번 사면 끝이지만, 켜는 순간마다 누진제 요금이 올라간다. 그래서 보유는 한 번의 결단으로 가능해도, 사용은 매일의 망설임이 된다. 저소득 가구는 그 망설임 앞에서 리모컨을 내려놓는다.
이 사실은 두 통계가 함께 증언한다. 본 분석이 사용한 가구에너지패널조사와, 전혀 다른 조사인 에너지총조사가 거의 동일한 수치에 도달했다. 보유 격차 1.3배, 사용 격차 2.15배.[7] 서로 다른 두 조사가 다른 방법으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 격차가 우연이나 측정 오류가 아니라 구조라는 뜻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에어컨을 가진 가구만 따로 떼어 비교해도 격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유 가구 중에서도 저소득층은 연 332kWh, 고소득층은 665kWh를 썼다 — 여전히 2배다. 에어컨이 있어도 저소득 가구는 고소득 가구의 절반밖에 켜지 못한다. 소유는 권리가 되지 못한다. 전기요금이라는 문턱 앞에서, 가진 기계는 켜지 못하는 기계가 된다.
이제 이 사용의 격차를 죽음의 격차 위에 포개 보자. 소름 끼치는 정렬이 드러난다.
가구주 연령별로 보면, 60세 이상 가구는 에어컨을 가장 적게 켰다. 연 366kWh — 가장 많이 켜는 40대(629kWh)의 58%에 불과하다. 보유율도, 보유대수도, 사용량도 모두 최저다. 그런데 바로 이 60세 이상이, 온열질환 사망자의 62.1%를 차지한다. 가장 더위에 취약한 집단이, 가장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 못 켜는 격차와 죽는 격차가 같은 자리에 포개진다.
그 안에서도 가장 취약한 표적은 노인 1인가구다. 60세 이상이 혼자 사는 가구는 보유율 85.2%, 연 사용량 272kWh로, 다른 가구(527kWh)의 절반밖에 켜지 못한다. 곁에 돌볼 사람도, 켤 여력도 없는 집. 폭염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문이다.
주거도 격차를 가른다. 전용면적 33㎡ 미만 — 반지하와 옥탑과 쪽방이 속하는 면적대 — 가구는 연 333kWh를 썼고, 132㎡ 이상 가구는 632kWh를 썼다. 1.9배다. 좁고 더운 집일수록 덜 켠다. 입주 형태도 마찬가지여서, 자가 가구(471kWh)보다 월세 가구(376kWh)가, 그보다 사글세·무상 거주 가구(338kWh)가 더 못 켠다. 내 집이 아닐수록 에어컨을 덜 갖고 덜 켠다. 벽에 구멍을 뚫고 실외기를 다는 일조차 집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더위의 피해는 우연히 흩어진 개인에게 닥치지 않는다. 그것은 노인에게, 저소득층에게, 좁은 셋집에 사는 사람에게, 혼자 사는 사람에게 — 정확한 좌표를 따라 쏠린다. 그리고 이들은 2장에서 보았듯, 에어컨을 켠 사람들이 거리로 내보낸 열을 고스란히 떠안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가진 자는 켜고, 못 가진 자는 그 열을 떠안는다. 이것이 수탈이 아니면 무엇인가.
4장 · 책임의 비대칭 — 갚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증을 한 줄로 묶으면 이렇다. 에어컨 사용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고(2장), 그 비용은 거래에 끼지 못한 약자가 떠안으며(3장),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르면 부담을 일으킨 자가 그 비용을 져야 한다(1장). 따라서 — 에어컨을 더 많이, 더 길게 켜는 자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제도는 이 결론과 어긋난다. 우리 사회가 더위에 맞서 가진 거의 유일한 복지 장치인 에너지바우처를 보자.
2026년 하절기 에너지바우처는 1인 세대 기준 연 29만 5,200원으로 인상되었다. 대상도 2025년 11월 차상위계층 전체로 넓혀졌다.[8]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두 개의 문턱에서 정작 가장 위험한 사람을 걸러낸다.
첫째 문턱은 자격이다. 바우처를 받으려면 소득 기준(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을 충족하는 동시에, 세대원 중 노인·영유아·장애인·중증질환자 등에 해당해야 한다. 소득과 인구학적 요건의 이중 관문이다. 문제는 더위의 위험이 이 수급 경계를 따라 분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문영은 『빈곤 과정』에서, 한국의 빈곤 통치가 가난한 사람을 '수급자'라는 좁은 범주로 분쇄하고 걸러내는 관료-기계로 작동한다고 말한다[13]. 빈곤을 수급이라는 컨테이너에 격리하면,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위험은 보이지 않게 된다. 폭염은 이 역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수급 경계 바로 바깥의 차상위 노인, 서류상 자녀가 있어 부양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는 독거노인 — 이들은 위험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제도의 문 앞에서 멈춰 선다.
둘째 문턱은 신청주의다. 바우처는 자동으로 지급되지 않는다. 대상자가 직접 복지로나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해야 한다. 이 한 줄의 절차가, 정보와 접근성이 약한 사람을 정확히 걸러낸다.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바우처 미사용액의 64.7%가 1인가구에서 발생했다.[9]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 1인가구는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3장에서 본 바로 그 노인 1인가구 — 가장 더위에 취약하고 가장 에어컨을 못 켜는 집단이, 제도 앞에서도 가장 먼저 탈락한다.
학술 연구는 이 어긋남을 더 분명히 보여준다. 2022년 기준, 중위소득 45% 이하 가구의 에너지빈곤율은 광열수도비 기준 58.7%에 달했다.[10] 가장 가난한 가구의 절반 이상이 에너지빈곤 상태라는 뜻이다. 같은 연구는 제언한다 — 인구학적 기준을 폐지하고 중위소득 50% 이하 단일 기준으로 통합하라고. 위험을 자격으로 거르지 말고, 위험 그 자체에 제도를 맞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책임의 비대칭이라는 원칙에서 세 가지 방향이 나온다.
하나, 제도를 위험에 정렬한다. 신청주의를 직권·자동 지급으로 바꾸고, 수급 경계에 갇힌 자격을 위험 기반으로 넓힌다. 더위로 죽는 사람의 좌표(고령·저소득·쪽방·야외노동)와 제도가 닿는 사람의 좌표를 일치시키는 일이다.
둘, 부담을 일으킨 자에게 비용을 청구한다. 오염자 부담 원칙을 냉방에 적용하면, 에어컨을 더 많이 켜는 자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설계가 정의에 부합한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정교화, 본격적인 탄소가격제 도입, 그리고 그 재원으로 취약계층의 냉방을 보전하는 순환 구조다. 시원함을 누린 자의 비용으로, 시원함을 누리지 못한 자의 안전을 산다.
셋, 냉방을 권리로 선언한다. 냉방은 더 이상 사치재가 아니라 생존재다. 폭염이 일상이 된 시대에, 적정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보편적 기본 서비스(UBS)'의 일부로 다뤄져야 한다[11]. 깨끗한 물과 최소한의 난방처럼, 최소한의 냉방을 국가가 보장해야 할 필수재의 목록에 올리는 일이다. 영국·프랑스·스웨덴이 에너지빈곤을 복지의 정식 의제로 끌어올린 것처럼[12], 한국도 '냉방권'을 말할 때가 되었다.
다시 35도 앞에서
다시 처음의 35도로 돌아온다.
이제 그 35도는 같은 숫자가 아님을 안다. 누군가의 35도는 리모컨 하나로 26도가 되고, 그렇게 덜어낸 9도의 열은 창밖으로, 골목으로, 발전소의 굴뚝으로, 그리고 누군가의 창문 없는 방으로 흘러간다. 시원함을 산 사람과 더위를 떠안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대기는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었지만, 어느새 가진 자가 자신의 열을 버리는 곳이 되었고, 못 가진 자가 그 열을 떠안는 자리가 되었다.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배치다. 더위 그 자체가 아니라, 더위를 누구의 죽음으로 만드는 구조가 문제다. 데이터는 누가 쓰러지는지를 보여주었고, 이론은 왜 그 죽음이 특정한 자리에 쏠리는지를 설명했다. 노인이, 저소득층이, 쪽방의 거주자가, 혼자 사는 사람이 더위에 죽는 것은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더 뜨거운 자리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동정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더위는 평등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임은 평등하게 물을 수 있고, 제도는 평등하게 닿을 수 있다. 부담을 일으킨 자가 그 부담을 진다는, 한 세기 된 원칙 하나면 충분하다.
같은 35도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당신의 시원함은, 누구의 더위로 만들어졌는가.
자료 출처
- [1] 질병관리청, 「2025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 결과」, 2025.10.16. — 환자 4,460명·전년比 +20.4%·사망 29명·60세 이상 62.1%·단순노무 26.0%·실외 79.2%.
- [2] 실외기 토출 온도(외기 35℃ 시 약 60℃): 현장 측정 보도(투데이에너지 등). ※학술 측정이 아닌 현장 시연·보도치.
- [3]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2024년 승인 국가 온실가스 배출계수」(전력 0.417 kgCO₂/kWh, 2023년 기준).
- [4]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도시 열섬 통계(여름철 도심–교외 표면온도 차 2~4℃).
- [5] Salamanca, F., Georgescu, M., Mahalov, A., Moustaoui, M., & Wang, M. (2014). Anthropogenic Heating of the Urban Environment due to Air Conditioning.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Atmospheres, 119(10), 5949–5965.
- [6] 에너지경제연구원, 가구에너지패널조사(HEPS) 13차(2022년 기준) 마이크로데이터. 3장의 보유·사용 수치(보유율·보유대수·연 사용량·연령·주거·가구원수별)는 가구가중치를 적용한 자체 분석.
- [7] 산업통상자원부·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총조사(가구부문). 보유 1.3배·사용 2.15배로 [6]과 교차검증.
- [8] 산업통상자원부·한국에너지공단, 에너지바우처 2026년 지원 공고(energyv.or.kr) — 1인 세대 295,200원, 차상위 전체 확대.
- [9] 정운천 의원실·한국에너지공단, 2022년 국정감사 제출자료 — 바우처 미사용액의 64.7%가 1인가구.
- [10] 신동면·강은혜, 「한국의 에너지 빈곤율 추정에 관한 연구」, 정책분석평가학회보 34(2) — 중위소득 45% 이하 에너지빈곤율 58.7%, 중위소득 50% 단일기준 제언.
- [11] 진상현·고재경, 「보편적 기본 서비스 관점에서 한국 에너지 복지 정책의 타당성 분석」, 융합사회와 공공정책 15(4), 2022.
- [12] 신동면·이주하, 「기후변화에 대응한 에너지빈곤 정책에 관한 비교연구 — 영국·프랑스·스웨덴」, 사회복지법제연구 10(3), 2019.
- [13] 조문영, 『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글항아리, 2022.
※ 본문의 온열질환 직업·발생장소 비율은 환자 전체 기준이며, 사망자 기준과 다름. 에어컨 연 사용량(kWh)은 정격소비전력·연사용일수·1일이용시간에 기반한 추정치로, 절대값보다 집단 간 격차(비율)의 해석에 무게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