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아티클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가

조건 없는 돈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나 — 네 개의 실험을 원 수치로 다시 읽다

박지민 · 명랑사회연구소 · 2026년 10월 · 월간 「명랑사회」 VOL.05 특집의 근거 아티클

월간 「명랑사회」 VOL.05(2026년 10월호) 특집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가」의 근거 아티클 전문입니다. 지면에는 요약과 핵심 수치만 실렸고, 전체 논증과 참고문헌은 이 페이지에 둡니다. 2026년 10월 22일 외부 사실검토(55항목)를 반영한 v4 원고이며, 이후 확인 사항은 이 페이지에서 갱신합니다.

여는 글 — 나도 그렇게 믿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이 명제를 의심하지 않았다. 조건 없이 돈을 주면 사람은 일을 그만둔다. 너무 당연해서 근거를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를 상상하는 것으로 검증을 대신했고, 상상 속의 나는 대체로 늦잠을 잤다.

그런데 이 명제는 지난 10년 사이 실제로 검증되었다. 그것도 상상이 아니라 무작위 대조 설계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핀란드에서, 캘리포니아의 중소도시에서, 텍사스와 일리노이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실험이 끝나고 보고서가 나왔는데도 논쟁은 여전히 같은 문장에서 시작해 같은 문장에서 끝난다 — "누가 일하겠는가." 데이터가 이미 답한 질문을 놓고 아직도 상상으로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 글은 그 실험들이 실제로 측정한 것을 원 수치로 다시 읽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늦잠을 잔 사람들의 사회는 어디에도 오지 않았다. 대신 데이터는 다른 것을 돌려주었다. 질문이 잘못 놓여 있었다는 것.

먼저 말을 정리해 둔다. 이 글에서 다루는 네 제도는 엄밀히 보면 서로 다르다. 핀란드는 실업자에게 준 무조건 급여이고, 스톡턴과 오픈리서치는 저소득층에게 준 보장소득이며, 서울의 디딤돌소득은 벌이가 기준선에 못 미치는 만큼의 일정 비율을 채워 주는 부(負)의 소득세, 줄여서 NIT다. 이 글의 네 사례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영구적으로 주는 교과서적 기본소득과는 다르다. 그래도 넷은 하나를 공유한다. 일하라는 조건을 걸지 않은 현금이라는 것. 그러니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할 자격이 있다.

오래된 질문

이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는 도둑을 교수형에 처하는 대신 먹고살 길을 마련해 주는 편이 낫다는 대목이 나온다. 도둑질의 원인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조건에 있다는 발상 — 이 연구소가 세 호째 붙들고 있는 문법이 이미 500년 전 문장에 들어 있다. 1797년 토머스 페인은 「토지 정의」에서 모든 사람이 스물한 살이 되면 국가 기금에서 15파운드를 받아야 한다고 썼다. 땅은 원래 모두의 것이었으니, 땅을 사유하게 된 사회는 그 대가를 모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다. 자선이 아니라 권리라는 것.

그런데 20세기에 이 아이디어를 정책의 언어로 옮긴 사람은 뜻밖에도 시장주의자였다. 밀턴 프리드먼은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부의 소득세를 제안했다. 소득이 기준선에 못 미치면 그 차액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세금으로 걷는 대신 거꾸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복지 관료제를 없애고 현금 하나로 대체하자는 뜻이었으니, 좌파의 이상과 우파의 효율이 같은 설계 위에서 만난 드문 순간이었다. 프리드먼의 NIT와 닮은 소득보장 구상은 1969년 닉슨 행정부의 가족부조계획에도 반영되었다 — 다만 그 계획에는 노동 관련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 안은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에서 죽었다. 어디서 죽었는지가 중요하다. 좌파는 금액이 적다고 반대했고 우파는 노동 의욕이 꺾인다고 반대했다. 반대의 방향이 정반대였는데 결과는 같았다. 이 패턴은 그 뒤로도 반복된다.

미국은 그 무렵 실제로 실험을 했다. 1968년 뉴저지에서 시작해 1982년까지 이어진 네 개의 주요 NIT 실험이다. 결과는 오늘의 논쟁과 놀랄 만큼 닮았다. 노동 공급은 줄었다. 다만 그 폭은 집단에 따라 달랐고 — 네 실험을 비교한 로빈스(1985)의 환산으로 남편은 연간 2주, 아내와 여성 한부모는 3주, 청년은 4주쯤 — 대량 이탈은 아니었다. 그런데 시애틀·덴버 실험에서 이혼율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자 정치는 그 한 줄만 기억했다. 후속 재분석은 순수 NIT가 혼인 해체를 늘렸다는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 논쟁이 벌어졌을 때 실험은 이미 끝나 있었다.

캐나다의 마니토바주 도핀이라는 소도시에서 1974년부터 5년간 진행된 '민컴'은 더 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예산이 끊겼고, 수집된 자료는 분석도 되지 않은 채 1,800세제곱피트 분량으로 창고에 들어갔다. 30년 뒤 경제학자 이블린 포겟은 그 상자 대신 마니토바주의 건강 행정자료를 꺼내 도핀 주민의 변화를 비교했다. 2011년 발표된 연구에서 도핀의 병원 입원은 8.5퍼센트 줄었고, 정신건강 관련 진료가 특히 감소했으며, 11학년에서 12학년으로 학업을 이어 가는 청소년이 늘었다. 다만 건강 효과의 인과 해석에는 2022년 그린의 재분석과 포겟의 재반론이 남아 있다. 창고의 상자가 40년 뒤에 열렸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계보에서 유일하게 실험이 아니라 제도가 된 것이 알래스카다. 1982년부터 석유 수입을 기금으로 굴려 주민 모두에게 해마다 배당을 준다. 액수는 해에 따라 다르고 2025년은 1,000달러였다. 40년 넘게 자격을 갖춘 주민 모두가 조건 없는 돈을 받아 온 곳인데, 존스와 마리네스쿠의 연구(2018년 작업논문, 2022년 게재)는 이 배당이 전체 고용에 유의한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파트타임 노동은 1.8퍼센트포인트 늘었다. 돈이 돌면서 일자리도 함께 늘어난 탓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1990년대 유럽에서 이 논의는 철학의 문제가 되었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1995년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에서 기본소득을 자유의 조건으로 놓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어야 하고, 실질적 자유에는 밥값이 든다는 것. 같은 시기 앤서니 앳킨슨은 조금 다른 길을 냈다. 아무 조건 없는 돈은 정치적으로 통과되기 어려우니, 돌봄·자원봉사·교육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넓게 인정하고 그 대가로 지급하자는 참여소득이다. 2026년 한국 정부가 검토하는 모델이 바로 이것이니, 뒤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이름이다.

계보를 이렇게 길게 적은 이유는 하나다. 이 질문은 새롭지 않고, 답도 여러 번 나왔다. 다만 답이 나올 때마다 정치가 상자에 넣어 창고로 보냈다. 지난 10년의 실험들은 그 상자를 다시 열어 본 것이다.

실험 하나, 핀란드 — 국가가 직접 물었다

2017년 1월, 핀란드 사회보험청 켈라는 실업급여를 받던 25세부터 58세까지의 국민 가운데 2,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2년 동안 매달 560유로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이 실험의 특징은 강제 참여였다. 뽑힌 사람은 거절할 수 없었다. 자원자만 모으면 결과가 왜곡된다는 이유였고, 자원자의 편향을 줄인 설계다. 일을 하지 않던 사람들의 취업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본 실험이라는 점도 기억해 두자. 취업을 해도 돈은 끊기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실험의 핵심이었다. 핀란드 실업급여는 일을 시작하면 줄어드는 구조라, 일을 해도 손에 남는 게 별로 없다는 불만이 오래된 문제였다. 정부가 알고 싶었던 것은 "돈을 주면 일을 그만두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급여를 끊지 않으면 일을 더 하는가"였다.

2020년 5월에 나온 최종 평가는 양쪽을 다 실망시켰다.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의 취업일수는 기본소득 집단 78일, 대조군 73일 — 공식 평가의 추정치로 약 6일 차이다. 통계적으로는 유의했지만 정책이 기대한 크기는 아니었고, 첫해에는 고용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후반 결과는 같은 시기에 도입된 구직 활성화 정책과 겹쳐 있어서 어느 쪽 효과인지 깔끔하게 나누기 어렵다. 일을 그만두게 하지도, 일자리로 돌려보내지도 않은 것이다.

대신 다른 자리에서 효과가 나왔다. 2018년 말 설문에 답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32 대 6.76 — 응답률이 31퍼센트와 20퍼센트로 달랐으니 전체 참여자의 효과로 넓혀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하는 숫자다. 스트레스와 우울, 외로움은 뚜렷하게 줄었고, 제도와 타인에 대한 신뢰는 올라갔다. 인지 기능 — 기억, 집중,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 — 도 더 낫다고 응답했다. 관료와의 씨름이 사라진 것의 효과라는 해석이 있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구직 활동을 증명하고, 서류를 내고, 소득이 생기면 신고하고, 잘못 신고하면 환수당한다. 그 절차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우선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진 것이 6일을 더 일하게 했는가 — 그 연결은 이 결과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두 변화가 같은 실험에서 함께 관측되었다는 것까지가 데이터다.

실험 둘, 스톡턴 — 가장 작고 가장 또렷한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은 2012년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파산 신청 도시였다. 그 도시의 젊은 시장 마이클 텁스가 2019년 2월에 시작한 것이 SEED 실험이다. 중위소득 이하 지역에 사는 주민 125명에게 2년간 매달 500달러를 직불카드로 주었다. 조건도 없고 보고 의무도 없었다. 재원은 시 예산이 아니라 민간 기부였다. 표본이 작다는 점은 처음부터 약점이었고, 그래서 이 실험은 규모보다 정밀도로 승부했다. 연구진은 카드 사용 내역을 항목별로 추적했고, 대조군 200명과 함께 6개월마다 자세한 설문을 했다.

2021년 3월에 나온 1년차 중간보고서가 이 실험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수급 집단의 풀타임 고용률은 실험 시작 때 28퍼센트에서 1년 뒤 40퍼센트로 올랐고, 같은 기간 대조군은 32퍼센트에서 37퍼센트였다. 다만 이것은 각 집단 안의 전후 변화이지 현금의 효과를 통계적으로 확정한 수치가 아니다. 2023년 학술지에 실린 후속 분석은 고용에서 두 집단의 유의한 차이를 확인하지 못했고, 조사 탈락이 많았다는 점을 적어 두었다. 추적 가능한 카드 지출에서는 식료품이 약 37퍼센트였고, 그다음이 생활용품과 공과금, 자동차 유지비였다. 술과 담배는 1퍼센트가 되지 않았다 — 카드 밖으로 옮긴 돈의 용도는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다. 불안과 우울 지표는 첫해에 유의하게 개선되었고, 월 소득이 들쭉날쭉한 정도가 줄었다.

연구진이 면담에서 들은 이야기가 이 실험의 진짜 성과다. 소득에 바닥이 생기자 어떤 참가자는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지키는 대신 하나를 놓고 더 나은 일자리를 알아보았고, 어떤 참가자는 1년 넘게 미뤄 온 자격증 시험을 봤으며, 어떤 참가자는 시간을 내서 면접을 다녔다. 평균을 바꿨다고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에게 500달러는 생활비가 아니라 시간을 사는 돈이었다.

물론 125명이다. 이 수치를 미국 전체로 늘려 읽으면 안 된다. 다만 이 실험이 보여 준 그림은 분명했고, 그 뒤 미국의 여러 도시가 비슷한 보장소득 실험에 뛰어들었다.

실험 셋, 오픈리서치 — 가장 크고 가장 불편한

셋 중 가장 큰 실험을 돈 댄 사람이 샘 올트먼이라는 사실은 이 논쟁의 2020년대적 성격을 말해 준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흔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그렇다면 조건 없는 돈이 답이 될 수 있는지를 자기 돈으로 물어본 것이다. 오픈리서치의 무조건 현금 연구는 2020년 11월부터 3년간 텍사스와 일리노이의 21세부터 40세 저소득층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를 주었다. 대조군 2,000명에게도 조건 없이 매달 50달러를 주었다. 3년간 3만 6,000달러, 연간으로 1만 2,000달러 — 등록 당시 참가자 평균 가구 연소득(2만 9,991달러)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 정도면 "돈이 적어서 효과가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2024년 7월에 나온 결과는 불편했다. 설문 기준으로 고용률은 대조군보다 2퍼센트포인트 낮았고, 주당 노동시간은 1.3시간 줄었으며, 지난 1년간 일한 기간은 0.26개월 짧았다. 배우자와 성인 가족의 노동시간도 함께 줄었다. 2026년 『계간 경제학 저널(QJE)』에 실린 게재본은 설문과 행정자료를 합쳐 다시 추정했고, 노동시장 참여는 4.2퍼센트포인트 낮았으며, 이전소득을 뺀 개인 소득은 연 1,900달러쯤 적었다. 측정이 다르니 "효과가 두 배가 됐다"는 뜻은 아니지만, 방향은 같다. 앞의 두 실험이 보여준 그림과 달랐고,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이 수치를 곧바로 인용했다. 봐라, 일을 덜 하지 않았느냐.

맞다. 덜 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어디로 갔느냐다. 노동 감소는 한부모 가구와 30세 미만에 집중되었다. 줄어든 시간 가운데 가장 큰 몫은 여가로 갔다 — 연구진은 이를 숨기지 않았고, 2026년 게재본도 줄어든 노동이 다른 생산적 활동으로 상쇄되었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정리한다. 그 위에 작은 변화들이 있다. 마지막 해의 교육·훈련 참여는 3.3퍼센트포인트 높았고(대조군 대비 14퍼센트), 가장 가난한 층에서는 더 컸지만, 여러 지표를 함께 검정하면 대부분의 교육 효과는 확실하다고 보기 어렵다. 3년차에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5퍼센트포인트 많았고, 흑인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가운데 창업하거나 창업을 도운 경험은 각각 9퍼센트포인트와 5퍼센트포인트 많았다 — 탐색적 결과다. 남을 돕는 데 쓴 돈 — 선물, 빌려준 돈, 기부, 가족 부조 — 은 월평균 22달러, 26퍼센트 늘었다는 대목은 몇 번을 읽어도 마음이 간다. 남성 하위집단에서는 위험 음주가 41퍼센트, 처방 없는 진통제를 쓴 날이 81퍼센트 줄었다. 이사를 알아보는 사람도, 실제로 이사한 사람도 늘었다. 2025년 7월에 따로 나온 분석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쓰는 돈이 늘고, 아이를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더 일관되게 훈육했다는 결과가 더해졌다. 아이의 학업 지표는 3년 안에 유의하게 달라지지 않았고, 마지막 해에는 부모의 스트레스가 — 특히 한부모에서 — 다시 높아졌다.

이 실험에서 정작 눈여겨볼 것은 건강 보고서에 있다. 첫해에는 병원 이용이 늘고 음주가 줄고 식료품 지출이 늘었지만, 신체건강이 좋아졌다는 유의한 증거는 3년 내내 나오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은 첫해에 뚜렷이 줄었다가 2년차부터 약해져 원래 수준으로 돌아갔다. 왜 약해졌는지는 이 연구로 확정할 수 없다. 이 결과를 "기본소득은 효과가 없다"로 읽는 사람과 "3년은 사람의 삶을 바꾸기에 짧다"로 읽는 사람이 있고, 나는 후자에 가깝지만 그 판단이 데이터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건 내 편향이다.

그래서 이 실험의 결론은 이렇게 적는 게 정직하다. 조건 없는 돈은 노동을 조금 줄였고, 늘어난 시간의 가장 큰 몫은 여가였으며, 교육·창업·돌봄의 변화는 일부 집단에서 작게 나타났고, 마음의 효과는 첫해에 강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네 문장 모두 참이다. 어느 한 문장만 인용하는 쪽이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험 넷, 서울 디딤돌소득 — 하후상박의 한국형

서울시의 디딤돌소득은 처음 이름이 안심소득이었다. 2022년 7월 시작해 2025년까지 진행된 이 시범사업은 위의 셋과 설계가 다르다. 기준 중위소득 85퍼센트 이하(재산 기준 별도) 가구에, 기준소득과 평가소득의 차액 절반을 준다. 소득이 0인 1인 가구라면 2025년 기준 매달 90만 원 남짓, 벌이가 늘면 지급액은 서서히 줄고, 기준을 넘으면 중단된다. 어려울수록 더 받고, 형편이 나아진다고 절벽처럼 끊기지는 않는다. 프리드먼이 1962년에 제안한 바로 그 설계다. 1차 484가구(3년), 2차 1,100가구(2년), 합쳐 1,584가구를 지원하고 비교집단을 두었다.

한국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오래 비판받아 온 지점이 여기다. 생계급여 자체는 차액을 보충하고 근로소득 공제도 있지만, 수급 자격을 잃는 순간 의료·주거 같은 다른 급여까지 함께 끊기니 조금 더 벌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구간이 생긴다.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숨기게 만드는 구조다. 디딤돌소득이 검증하려 한 것은 이 절벽을 완만하게 하면 사람들이 더 버는가였다.

2024년 10월과 2025년 12월 서울시가 국제포럼에서 공개한 서울대 연구진의 평가 요약에 따르면, 지원 가구 가운데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85퍼센트를 넘어 지급이 중단된, 이른바 탈수급 가구의 비율은 1차년도 4.8퍼센트에서 2차년도 8.6퍼센트로 올랐고 3차년도에 전년보다 1.1퍼센트포인트 더 높아졌다. 근로소득이 늘어난 가구는 2차년도 31.1퍼센트에서 3차년도에 2.8퍼센트포인트 더 늘었다 — 둘 다 전년 대비이지 비교집단 대비 순효과는 아니다. 식료품과 교통 같은 필수 지출이 늘고, 정신건강과 영양 지표가 좋아졌다. 그리고 여기서도 노동은 일부 줄었다. 가구주가 일을 하고 있는 비율이 10.4퍼센트포인트 낮았는데, 연구진은 교육과 의료 지출이 함께 늘어난 것을 보고 이를 사람에 대한 투자의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가구주가 아닌 구성원의 노동은 줄지 않았고, 지원 가구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비교집단보다 25만 원 높았다. 일을 그만두게 만든다던 제도에서 탈수급과 근로소득 증가가 함께 관측된 것이다.

이 실험의 한계도 적어 둔다. 무작위 배정은 했지만 지원 가구는 자기가 지원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평가의 요약이지 세부 추정표가 아니다. 비교집단과의 차이가 어디까지 통계적으로 유의한지, 가구소득 25만 원에 지원금이 포함되는지는 원자료가 공개되는 대로 확인해 홈페이지 보고서에 붙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실험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실제 복지제도 옆에서, 한국의 물가와 노동시장 안에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헬싱키의 수치를 서울에 옮겨 오려면 환율 말고도 바꿔야 할 게 너무 많다.

보론 — 케냐의 200개 마을

부자 나라의 실험만 읽으면 반쪽이다. 기브다이렉틀리가 2018년부터 케냐 보메트·시아야 두 카운티의 295개 마을(지원 195, 통제 100)에서 진행 중인 실험은 셋 중 무엇을 줄 것인가를 물었다. 한 집단은 12년간 매달 22.5달러를, 한 집단은 2년간 같은 금액을, 한 집단은 500달러를 한꺼번에(송금 한도 때문에 두 번에 나눠) 받았다. 2023년 12월에 나온 첫 2년 결과에서, 돈을 받은 사람들은 일을 덜 하지 않았다. 남의 밭에서 품을 파는 일에서 자기 장사로 옮겨 갔을 뿐 총 노동시간은 줄지 않았다. 장기 약속과 일시금을 받은 쪽이 단기 월 지급보다 여러 사업 지표에서 나았고, 12년을 약속받은 쪽은 회전저축모임 참여가 더 많았으며, 매달 받은 쪽이 우울을 가장 많이 줄였다. 12년 실험의 2년차 결과라는 점은 기억해 두자. 같은 돈이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 사람이 하는 일이 달라진 것이다. 앞으로의 설계 논쟁에서 이 결과는 생각보다 자주 인용될 것이다.

겹쳐 읽기

핀란드 스톡턴 SEED 오픈리서치 서울 디딤돌소득
기간 2017–18 (2년) 2019–21 (2년) 2020–23 (3년) 2022–25 (2~3년)
대상 실업자 2,000명 저소득 지역 주민 125명 21–40세 저소득 1,000명 중위 85% 이하 1,584가구
금액 월 560유로 월 500달러 월 1,000달러 기준·평가소득 차액의 50%
설계 무조건 급여 보장소득 보장소득 NIT(하후상박)
일 — 측정한 것 취업일수: 대조군보다 약 6일 많음 풀타임 비율: 지원 28→40%, 대조 32→37% (집단 내 전후 변화) 노동시장 참여 −4.2%p, 주 1~2시간 감소 (통합자료) 가구주 근로 여부 −10.4%p · 탈수급 1차 4.8%→2차 8.6%
함께 읽을 한계 첫해 효과 없음, 활성화 정책 중첩 후속 논문에서 고용 차이 비유의, 조사 탈락 2024년 설문 요약은 −2%p; 늘어난 시간의 최대 항목은 여가 시 공개 요약, 전년 대비 수치
마음 응답자 만족도 7.32 대 6.76 첫해 불안·우울 감소 첫해 개선 후 감쇠 정신건강·영양 지표 개선

네 실험을 겹쳐 놓으면 세 가지가 보인다.

우선, 일을 놓는 사람들의 사회는 어디에도 오지 않았다. 가장 큰 감소가 오픈리서치의 노동시장 참여 4.2퍼센트포인트, 디딤돌의 가구주 근로 비율 10.4퍼센트포인트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스무 명 가운데 한두 명이 일을 멈춘 것이지 사회가 멈춘 것은 아니다. 핀란드는 그대로였고, 스톡턴은 확정할 수 없었으며, 케냐는 일의 종류가 바뀌었다. "누가 일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데이터가 돌려준 답은 "거의 모두가, 계속"이다. 상상 속의 나는 늦잠을 잤지만, 실제 사람들은 대체로 출근했다.

다음으로, 노동이 줄어든 자리를 채운 것은 실험마다 달랐다. 오픈리서치에서 가장 큰 항목은 여가였고, 교육과 창업의 변화는 일부 집단에서 작게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교육·의료 지출이 늘었고, 스톡턴에서는 면담한 사람들이 구직과 자격 준비에 시간을 썼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 이 글을 쓸 때 "줄어든 것이 노동이었다면 늘어난 것은 다음 노동의 준비였다"고 적었다. 데이터는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는다. 여가로 간 시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지 않는 것이 이 연구소의 문법이라고 믿는다. 쉬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주관적 안녕감이나 정신건강의 개선은 네 실험 모두에서 관찰되었다. 그러나 모든 집단과 시점에 지속된 것은 아니다. 오픈리서치에서는 첫해의 개선이 이후 사라졌고 마지막 해에 부모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높아졌다. 핀란드의 만족도는 응답률이 낮은 설문에서 나온 숫자다. 척도와 기간이 다른 결과를 한 줄로 세울 수는 없다. 돈이 마음에 닿는다는 것까지가 데이터이고, 얼마나 오래 닿는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한계도 데이터의 일부다. 네 실험 모두 2년에서 3년의 한시적 개입이다. 언젠가 끝난다는 걸 아는 돈과 평생 이어지는 돈에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핀란드의 고용 효과는 다른 정책과 분리되지 않고, 스톡턴은 125명이며, 서울은 평가의 요약만 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실험도 재원을 검증하지 않았다. 보편 지급의 재정 규모, 조세 저항, 물가 — 이것들은 실험실 밖의 문제다. 실험이 답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까지다. 거기까지만 읽어야 정직하다.

지금, 한국 — 일의 입구

이 실험들을 지금 다시 읽는 이유는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어서다.

하나는 일의 입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가 미국 최대 급여처리업체 ADP의 자료로 추적한 분석은 2025년 8월 처음 나왔고, 2026년 8월에 갱신되었다.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직군 — 소프트웨어 개발, 고객 상담 — 에서 22세부터 25세의 고용은, 노출이 적은 직군의 같은 나이대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걸었다면 있었을 수준보다 19퍼센트 낮다. 2026년 6월 자료 기준이다. 1년 전 처음 발표 때는 15퍼센트였고, 그 뒤 꾸준히 벌어졌다. 같은 직군의 30대 이상 고용은 오히려 안정적이거나 늘었다. 연구진은 이 숫자가 인공지능의 효과를 인과적으로 추정한 것이 아니라 미국 한 급여처리업체 표본에서 관찰된 패턴이라고 거듭 적어 두었고, 나도 그렇게 읽는다. 다만 패턴의 모양은 분명하다. 경제 전체의 대량 해고는 없다. 충격은 해고의 형태가 아니라 신규 채용이 줄어드는 형태로 온다. 그 표본에서는, 경력이 없는 사람이 경력을 쌓을 첫 자리가 줄고 있었다. 한국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한국은행은 2023년 분석에서 국내 취업자의 약 12퍼센트, 341만 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큰 직업에 있다고 추정했다 — 실제로 사라진 일자리 수가 아니라 노출도의 추정이다. 자동화의 일차 피해자는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기 전에 '첫 일자리와 다음 일자리 사이에 갇히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제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26년 3월 보건복지부는 기본사회기획단 안에 중앙부처 최초의 기본소득기획팀을 두었고, 4월에는 '기본소득 도입방안 연구' 용역 발주가 보도되었다. 7월 17일 정은경 장관은 라디오에서 청년 소득보장 시범사업을 "내년에라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고, 검토 중인 길은 둘이라고 했다. 모두에게 주는 보편 수당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주는 참여소득. 같은 날 복지부는 "청년 참여소득 도입은 정해진 바 없다"는 설명자료를 냈다. 그리고 9월 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27년 복지부 예산안 발표 자료에는 — 아동기본수당, 기준 중위소득 6.7퍼센트 인상, 기초연금 차등 지급, 위기가구 30만 원 선지급은 들어갔지만 — 기본소득이든 참여소득이든 그 이름을 단 시범사업 항목을 찾지 못했다. 세부 사업설명서 전체를 대조한 것은 아니고, 국회 심의에서 들어갈 수도 있다. 10월 22일 확인 기준으로는 "연구는 발주되었고, 장관은 내년을 말했고, 구체적 시행계획은 확인되지 않았다"가 정확한 문장이다. 앳킨슨이 1996년에 낸 참여소득의 길을 30년 뒤 서울이 걷겠다는 뜻은 분명하지만, 발걸음은 아직 떼지 않았다.

세 번째는, 이 글을 9월에 처음 쓸 때 내가 빠뜨린 사실이다. 한국에서 조건 없는 돈이 올해 2월부터 다달이 실제로 지급되고 있다. 농어촌에서다. 뒤에서 따로 적는다.

지금, 한국 — 제도의 지도

그러면 지금 한국에서 일과 일 사이에 놓인 사람은 무엇을 받을 수 있나. 2026년의 제도 지형을 있는 그대로 적고, 2027년 예산안이 바꾸는 것을 그 옆에 적는다.

실업급여는 일반 근로자의 경우 이직 전 18개월 안에 보수를 받은 날(피보험단위기간)이 180일 이상이어야 받는다. 주 5일 근무자는 대개 7~8개월을 꼬박 다녀야 채워지는 일수다. 2026년 기준 하루 8시간 근로자의 하한액은 6만 6,048원, 상한액은 6만 8,100원으로 폭이 2,000원 남짓이고, 받는 기간은 나이와 가입 기간에 따라 120일에서 270일이다. 첫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은 애초에 대상이 아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스스로 그만둔 사람도 원칙적으로 대상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35세 미만의 생애 첫 자발적 이직자에게도 구직급여를 주는 안을 추진·검토 중이라고 8월에 밝혔는데, 법을 고쳐야 하는 일이라 아직 권리가 된 것은 아니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그 바깥을 겨냥한다. 2026년 구직촉진수당 기본액은 월 60만 원, 최대 6개월, 그러니까 360만 원이다. I유형에는 소득·재산을 심사하는 요건심사형과, 취업 경험이 부족한 청년도 들어올 수 있는 선발형이 있고 — 청년은 중위소득 120퍼센트, 재산 5억 원까지 — 어느 쪽이든 상담사와 취업활동계획을 세우고 매달 활동을 보고해야 한다. 안 하면 끊긴다. 돈이 붙어 있는 곳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2027년 정부안은 이 수당을 65만 원으로 올리고, 2028년 70만 원을 중기 목표로 둔다.

여기서 2027년 정부 예산안이 한 가지를 바꾼다. 고용노동부 예산안에 '청년 첫 취업지원제도'가 들어갔다. 일한 경험이 없는 청년 16만 명이 대상이고 예산은 3,793억 원이다 — 보도에 따르면 저소득 청년 12만 명에게 구직수당 월 65만 원을 최대 6개월 주고 나머지 4만 명에게는 취업활동계획과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며, 재원은 새로 만드는 미래대응기금이지만, 이 세부는 사업설명서로 확인할 것이다. 9월에 이 글을 처음 쓸 때 나는 "학교와 첫 직장 사이의 구간을 통째로 받쳐 주는 제도는 없다"고 적었다. 정확히는 지금도 국민취업지원제도 선발형이 경력 없는 청년을 받고 있고, 2027년 안은 그 문을 넓히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받침이 두꺼워진다. 다만 그 받침의 모양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6개월이고, 저소득층에 한하며, 활동계획을 세우고 보고해야 받는 돈이다. 조건 없는 바닥을 깐 것은 아니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19세부터 34세의 미취업 청년에게 월 50만 원을 최대 6개월 준다. 2026년에는 3월에 2만 명, 5월에 6,000명을 더 모집했고, 멘토링과 취업 세미나 참여가 붙는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만 24세 한 해 동안 분기마다 25만 원, 1년 100만 원을 지역화폐로 주고, 경기도에 계속 3년 또는 합산 10년 거주해야 한다. 소득도 취업 여부도 묻지 않으니 설계는 기본소득에 가깝지만, 인생에서 딱 한 해다. 그리고 2020년의 재난지원금과 2025년 여름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있었다. 지급 단위와 수단, 2차 지급의 상위 10퍼센트 제외처럼 서로 다른 점이 있지만, 둘 다 한시적이었고, 살라고 준 돈이 아니라 쓰라고 준 돈이었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구멍의 모양이 보인다. 2026년의 스물셋은 실업급여의 대상이 아니고, 국민취업지원제도 선발형에 들어갈 수는 있으나 6개월이면 끝나며, 청년수당은 모집 인원이 정해져 있고,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24세 한 해다. 2027년의 스물셋 앞에는 조금 더 넓어진 문이 있다. 구멍이 작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메워지는 방식은 하나같이 같다. 기한이 있고, 조건이 있고, 서류가 있다.

두 개의 한국 실험 — 서울의 디딤돌과 농어촌의 15만 원

그런데 한국에는 지금 성격이 정반대인 두 실험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다. 하나는 앞에서 읽은 서울의 디딤돌소득이다. 어려울수록 더 주고, 벌이가 늘면 서서히 줄이는 NIT. 조건은 소득이고, 소득을 묻기 때문에 서류가 있다. 2025년 12월 3차년도 평가까지 나왔고, 서울시는 이 모델을 전국으로 넓히자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인구감소지역 10개 군 — 연천, 정선, 옥천, 청양, 장수, 순창, 곡성, 신안, 영양, 남해 — 을 뽑아 2026년 2월부터 주민 한 사람에게 매달 15만 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주고 있다. 소득을 묻지 않고, 나이를 묻지 않고, 일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 군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제로 살며 신청하면 받는다. 6월 11일에는 화천, 보은, 진안, 무주, 구례, 보성, 청송 일곱 군이 더해져 열일곱 군이 되었고, 추가 선정에는 59개 군 가운데 44개 군이 신청했다. 추경으로 706억 원을 확보해 19만 6,000명이 대상에 더해졌다. 10월 8일 농식품부는 2027년에 18개 군 안팎을 더 뽑는 공모를 냈고, 2027년 정부안은 국고보조율을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올린다. 쓸 수 있는 곳이 정해진 상품권이라 교과서의 “자유로운 현금”과는 다르지만, 이름에 기본소득이 들어간 현행 제도 가운데 설계가 교과서에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거주하는 모두에게, 소득과 일 여부를 묻지 않고, 다달이.

두 실험은 묻는 것이 다르다. 디딤돌은 "가난한 사람에게 절벽 없이 돈을 주면 더 버는가"를 묻고, 농어촌 기본소득은 "한 지역의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돈을 주면 그 지역이 사는가"를 묻는다. 농식품부는 6월 발표에서 기존 10개 군의 인구가 4.7퍼센트 늘고 신규 가맹점이 13.7퍼센트 늘었다고 집계했다. 이 숫자는 정부가 스스로 낸 것이고, 비교집단이 없으며, 지급 몇 달 만의 수치다. 인구가 늘었다면 전입 신고를 한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고, 그 사람이 실제로 거기서 사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러니 이 수치를 기본소득의 성과로 읽는 것은 아직 이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핀란드와 스톡턴과 서울이 2,000명, 125명, 1,600가구를 놓고 물었던 질문을, 한국은 지금 수십만 명을 놓고 묻고 있다. 제대로 측정만 한다면 — 비교 가능한 이웃 군을 두고, 전입이 아니라 거주를 세고, 상품권이 어디서 쓰였는지를 추적한다면 —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본소득 실험 가운데 하나가 된다. 비교집단을 둔 평가가 없다면, 도핀의 상자가 하나 더 생길 뿐이다.

네 실험이 일관되게 보여준 조건 없는 돈의 쓸모는 노동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건너가는 동안 버티게 하는 것이었다. 실직과 재취업 사이, 학교와 첫 직장 사이, 돌봄과 노동 사이, 나쁜 일자리와 덜 나쁜 일자리 사이. 스톡턴의 500달러는 그 사이를 건너는 동안 아르바이트 하나를 놓아도 되게 했고, 오픈리서치의 1,000달러는 그 사이에 학교로 돌아가게 했으며, 서울의 디딤돌소득은 그 사이에 벌이가 늘어도 급여가 끊기지 않게 했다. 농어촌의 15만 원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는, 비교집단을 두고 세어 본 사람이 아직 없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지금 좁히고 있는 것이 정확히 그 사이의 구간이다.

질문을 다시 놓기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검증 가능한 질문이었고, 검증되었다. 답은 이렇다. 사람들은 대체로 일했다. 일을 덜 한 사람도 있었고, 그 시간은 쉬는 데도, 배우는 데도, 아이를 보는 데도 쓰였다. 마음은 편해졌고,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는 곳도 있었다. 실험마다 달랐다. 여기까지가 데이터다.

그런데 데이터를 읽고 나면 질문이 처음부터 잘못 놓여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가"는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을 상정한 질문이다. 실험에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실험에 있었던 사람은 일과 일 사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질문은 이렇게 다시 놓아야 한다. 다음 일로 건너가는 동안, 사람은 살 수 있는가.

2026년 가을 한국의 답은 "조건을 채우면, 정해진 기간만큼"이다. 실업급여는 이력을 요구하고 120일에서 270일이면 끝나며, 국민취업지원제도와 내년의 첫 취업지원제도는 계획서와 보고를 요구하고 반년이면 끝난다. 복지부가 참여소득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 구멍을 봤기 때문이라고 나는 읽는다. 다만 참여소득은 '기여'를 누가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국민취업지원제도의 확장판이 될 수도 있고, 앳킨슨이 뜻한 넓은 문이 될 수도 있다. 조건을 붙이는 순간 서류가 생기고, 서류가 생기는 순간 핀란드 실험이 지운 그 스트레스가 돌아온다. 설계의 갈림길은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갈림길의 한쪽 끝에서 열일곱 군이 이미 조건 없는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이 어디로 가는지를 비교집단을 두고 세는 일이, 참여소득 연구 용역보다 먼저 끝나야 할 숙제다.

기본소득 실험 10년의 데이터는 완성된 제도를 주지 않는다. 어느 한 설계가 낫다는 증명도 주지 않는다. 데이터가 보여 주는 것은, 누구에게 얼마를 얼마나 오래 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어느 설계에서도 사람들이 일을 놓고 눕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데이터가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일과 일 사이의 생활을 받쳐 주는 제도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건너가는 구간을 받치는 것. 누구에게,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는 그다음의 문제이고, 그 문제를 이번 호 특집이 한국의 숫자로 걷는다.

너무 어렵게 시작하지는 말자. 창고의 상자는 이미 여러 번 열렸다. 이번에는 닫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지금 열려 있는 상자 하나는, 세어 두면 된다.


참고문헌

수치는 각 기관의 공표 자료를 원 출처로 한다. 정부·지자체가 스스로 발표한 성과(디딤돌소득, 농어촌 기본소득)는 본문에 그 사실을 밝혔다. 2027년 관련 수치는 국회 심의 전 정부안이며, 발행 직전 심의 상황을 다시 확인한다. 2026년 10월 22일 외부 사실검토(55항목)를 반영했고, 인쇄 전 남은 확인(SEED 2023 고용 추정의 세부, 디딤돌 가구소득의 지원금 포함 여부, 2027년 첫 취업지원 세부, 복지부 용역 공고일)은 홈페이지 보고서에서 갱신한다.

이 글은 월간 「명랑사회」 VOL.05(2026년 10월호) 특집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가」(04–17면)의 근거 아티클입니다. 지면판은 웹진·지면 뷰어·PDF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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