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달은 여러 화두가 나를 건드렸다. 먼저 오픈AI가 내놓은 GPT-6 아스트라. 직접 써 보고는 연구자로서 무기력감과 허무함을 넘어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이틀 동안 컴퓨터에서 멀어져 종이책을 부여잡고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특히 위로와 응원이 지닌 힘이 참 위대하게 느껴졌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순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뭉클했던 느낌만은 남아 있다. 각자는 혼자이지만 결국 혼자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었다. 사람이 주는 행복감이란 게 그렇더라.
마지막 화두는 인간에게만 있는 '착함'이라는 성질이다. 충청도에서 가장 심한 욕이 "그래도 사람은 착해유"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사람을 두고 얼마나 할 말이 없으면 착하다는 말밖에 못 할까. 직장에 다닐 때 한 상사가 자기 직원을 두고 '순진이 9단'이라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착하다는 게 뭘까. 태도로서의 착함이 온화하고,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의도가 없는 것이라고 해 보자. 그렇다면 한없이 착한데 자기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그 피해와 비용을 남에게 넘긴다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해서, 내 입장을 분명히 말하지 못해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채 일이 굴러가게 두는 것. 남을 신경 쓰게 하기 싫어서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로 덮고 넘어가는 것. 그것을 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착하지만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과연 착한 걸까?
이 무한 루프에 걸린 채 9월을 마무리하고 있다. 물론 나름의 결론은 났다. AI, 나아가 AGI의 공습에는 더 공격적인 일기 쓰기로 맞서는 중이다(잉크병이 드디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더해진, 인간만의 지성이 녹슬지 않도록 부지런히 가동하고 있다.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온기는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 가까운 사람들과의 나눔 속에서 사소한 감동이라도 주고받으며 지키고 있다.
착함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했다. 착하다는 말이 무조건적인 관용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그 뜻 그대로 존경의 단어로 쓰였으면 좋겠다. 착한 무능의 뒷수습은 대개 성실한 주변 사람이 떠안고, 그들에게 그 착함은 점점 부담이 된다. 그러니 맡은 역할의 무게에 따라 관용의 폭도 달라야 한다. 갈등을 피하려는 착함, 거절하지 못하는 착함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려고 고른 회피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 없이는 덕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보았듯,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는 착함은 가치로서의 선(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향일 뿐이니까.
이런들 저런들 사람은 저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거다. 그러니 착함이니 선함이니 책임감이니 하는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며 스트레스 받지 말자. 그 잣대는 나에게만 대고, 나 자신은 후지지 않게 살면 된다. 영악하다고? 아니, 이건 영리한 거야! 그러니 우리 모두, 야호~ — 편집장 박지민
우리는 셋이라는 숫자에 유난히 마음을 걸어 두고 산다. 작심삼일이라 하고, 삼세판이라 한다. 세 번까지는 해 보고, 세 번을 넘기면 그때부터가 진짜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세 번째 명랑이 순풍을 탔다면, 네 번째 명랑은 내내 아슬아슬했다. 추석 연휴가 끼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면에 실을 사진의 사용 허락을 받는 일이 사람 애를 태웠다. 더불어 숲 성산은 운영 기업과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토교통부에까지 문을 두드려야 했다.
그런데 답은 뜻밖에 빨랐다. 금천구청 복지지원과 김유진 님,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 국토교통부 대변인실 모두 그날로 회신을 주었고, 우리나라 공무원에 대한 존경이 새삼 일었다. 지면을 빌려 감사드린다. 위스테이별내 조합 사무국에는 고마움이 감동으로 이어졌다. 촉박한 시간에도 그토록 친절한 답을 보내 주셨다. 애써 주신 이은정 주임님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호를 만들며 매너리즘이 조금 왔다. 비영리로 만들어 무료로 나누는 일이라 보상이 있을 리 없고, 혼자 파고들어 사람들과 나누는 이 일이 문득 헛헛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은정 주임님의 답변이 꼭 이 일에 대한 칭찬처럼 읽혔다. 그 한 통으로 앞으로 한두 달은 또 힘을 내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의 모습을 갖춰 간다. 사람은 이렇게 사람과 함께 완성되어 가는 것이지 싶다. 이 명랑사회도 나 혼자 시작했지만, 이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듯이.
바람의 온도가 바뀌었다. 그 무더웠던 여름도 결국은 이렇게 자리를 내어 준다. 우리도 계절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뺏고 뺏기는 것이 아니라, 내어 줄 자리는 내어 주고 들어갈 자리에는 들어가면서. — 발행인 박지민
| 면 | 코너 | 제목 |
|---|---|---|
| 02 | 편집장 왈 ③ | 착하다는 게 뭘까 — AI에 놀란 9월, 사람의 온기와 착함의 책임을 생각하다 |
| 04 | 특집 한국에서 이웃과 사는 집 | 문을 열면 인사할 사람이 있는 집 — 여는 글 |
| 05 | 특집 1부 · 위스테이별내 | 아파트가 마을이 되기까지 — 이삿짐보다 먼저 도착한 이웃 · 491세대가 함께 일하는 법 · 누가 짓고, 누가 갚고, 무엇이 남는가 |
| 09 | 특집 · 조합에 묻다 |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에 묻다 — 서면 답변 다섯 문항 |
| 10 | 특집 2부 · 나란히 놓고 보기 ① | 보린주택에서 혼자 사는 일을 돕는 방법 — 안부를 궁금해할 사람 |
| 12 | 특집 2부 · 나란히 놓고 보기 ② | 더불어 숲 성산에서 시작된 작은 공동체 — 열한 집의 구성과 값 · 401호 · 땅은 공공이, 집은 사업자가 · 시작과 오늘 |
| 17 | 특집 · 덴마크였다면 | 성산의 실패를 다섯 갈래로 읽기 — 아직 보지 못한 장부 |
| 19 | 특집 맺음 | 세 집에서 배운 것 |
| 20 | 스눕독의 여행기 ② | Be Here, 하버드 — 우연히 만난 하버드 아트 뮤지엄 |
| 23 | 명랑 건강 ③ | 오래 앉아 있을 때 허리가 아프다면? — 리스파인 운동 |
| 26 | NEW 국내 전시관람기 ① | 물방울이 태어나던 집 — 평창동 언덕, 김창열 화가의 집 |
| 28 | 부리의 명랑음악당 ③ | 저항의 서명, 밀봉된 러브레터 — 쇼스타코비치의 네 음, 베르크의 50년 |
| 30 | 맥시멀리스트의 방 ③ | 나의 브롬톤 — 열세 대쯤의 브롬톤, 그래도 하나만 고르라면 |
| 33 | 월간 집밥연구소 ③ | with 양배추 — 볶고, 굽고, 말아 끓이는 양배추 네 접시 |
| 35 | 명랑 뷰티 ③ | 여름의 흔적을 지우고, 가을의 결을 입을 때 |
| 36 | NEXT | 다음 호 예고 · 판권 |
지난달 북유럽의 시니어 코하우징을 살펴보면서 궁금해진 것은 우리 동네의 집이었다. 각자의 방이 있고, 문을 열면 함께 앉을 곳이 있는 집.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혼자 있을 수 있고, 누군가의 손이 필요한 날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집. 한국에도 그런 집이 있을까. 있다면 누가 지었고, 누가 꾸려 가고 있을까.
이번 호는 경기도 남양주의 위스테이별내를 중심에 둔다. 491세대가 사는 아파트인데, 입주민이 만든 사회적협동조합이 마을의 살림을 꾸린다. 입주 전부터 이웃이 먼저 만났고, 공동공간을 주민이 운영하며, 집을 짓는 돈의 구조에도 조합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여기에 금천구의 보린주택과 마포의 더불어 숲 성산을 나란히 놓아, 같은 질문이 다른 조건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 본다.
경기 남양주 · 491세대의 아파트 마을
남양주 별내동의 위스테이별내는 60·74·84㎡ 491세대로 지어진 아파트다. 겉모습은 신도시의 여느 단지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이 단지의 살림을 꾸리는 방식이다. 입주민은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고, 조합이 공동공간과 마을 일을 맡는다. 조합은 스스로를 "국내 최초 사회적협동조합 아파트 마을공동체"라고 소개한다.
순서도 거꾸로였다. 조합은 2017년 5월에 먼저 만들어졌고, 입주는 3년 뒤인 2020년 6월이었다. 집이 다 지어지기 전에 이웃이 될 사람들이 먼저 모인 셈이다. 지금은 1,400여 명이 이곳에 산다. 시니어 전용 주택은 아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과 은퇴한 부부가 같은 동에 산다. 그래서 이번 특집이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세대가 섞인 큰 단지에서,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합 연혁에는 입주 전 커뮤니티 디자인 워크숍을 46회 열었고 연인원 576명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주민이 건물을 직접 설계했다는 뜻은 아니다. 사업자의 안내는 이 참여를 공동시설의 집기와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일로 설명한다. 그래도 함께 쓸 공간에 자기 필요를 말할 통로가 입주 전부터 열려 있었다는 것은 작지 않은 차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동공간은 2020년 보도 기준 약 3,000㎡로, 법정 기준의 2.5배다. 이름부터 동네를 닮았다. 공용 부엌을 둔 '동네카페', 주민이 책을 고른 '동네책방', 악기와 목공을 위한 '동네창작소', 헬스와 요가·댄스·농구·탁구를 하는 '동네체육관', 그리고 동네빨래터, 동네키움방, 동네방송국. 경비원은 '동네보안관', 미화원은 '동네벼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입주를 앞둔 박기용 씨는 이사와 청소를 공동구매하고 지역 정보를 나누던 과정을 전했다. 이삿짐을 들이기 전부터 서로에게 필요한 일이 있었다.



이 장면이 반가운 이유는 공동체의 시작이 생각보다 소박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모두의 가치관이 같을 필요는 없다. 이사 업체를 함께 알아보거나 내가 잘 아는 동네 정보를 건네는 정도로도 말을 섞을 수 있다. 다만 그렇게 생긴 관계가 이사 뒤에도 이어지려면 장소와 시간, 그리고 일을 나누는 방식이 필요하다. 위스테이별내가 그다음에 만든 것이 바로 그 방식이다.
자료: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연혁·서면 답변(2026. 9. 29) · 위스테이 FAQ · 이데일리(2020. 6. 25) · 아주경제(2020. 6. 25)
마을 일은 위원회가 나눠 맡는다. 2022년 조합 이사장의 기고에 따르면 돌봄, 교육, IT, 갈등조정 등의 위원회에 입주민 120여 명이 참여하는 집행위원회가 매달 회의를 열었다. 2024년 보도에서는 10개 위원회에 조합원 130여 명이 참여한다고 했고, 2026년 서평은 상근 코디네이터 6명과 약 100명의 활동가가 마을을 움직인다고 전한다. 해마다 숫자가 조금씩 다르지만, 491세대 가운데 백 명 남짓이 꾸준히 손을 보태 왔다는 그림은 같다.
일은 작은 가게와 일자리로도 이어졌다. 로컬푸드를 파는 협동상회, 배달을 맡는 60플러스협동조합, 돌봄 카페를 꾸리는 돌봄협동조합이 조합 곁에서 움직인다. 5월에는 공동체의 날 '꽁날'을, 8월에는 '물놀이 대잔치'를 열고, 계절마다 동네신문을 낸다. 올해 6월에는 주민 마을작가단이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빨간소금)를 펴냈다. 같은 라인의 이웃이 만나는 반상회, 이웃과 함께 연 '오늘도가게', 자전거와 춤, 막걸리를 매개로 모이는 동아리가 책에 담겼다.
지난 호의 북유럽 시니어 코하우징과 이어지는 대목도 있다. 2023년 보도는 단지 안의 '60+센터'를 경로당 같은 쉼터이면서 일자리도 만드는 곳으로 소개했다. 60플러스협동조합이 배달을 맡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세대가 섞인 큰 단지에서 은퇴한 주민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면서 마을 일을 맡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주민이 같은 온도로 참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운영 시간을 정하고, 어질러진 자리를 정리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일은 실제 노동이다. 회의에 자주 나오지 않는 사람도 편안한지,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진 조합원에게도 자리가 남는지. 이 질문은 조합에 직접 물었다(09면).
자료: 한국아파트신문 손병기 기고(2022. 9. 1) · 라이프인(2024. 3. 14) · 오마이뉴스 서평(2026. 6. 13) · 사회적경제뉴스(2026. 6. 2) · 브라보마이라이프(2023. 11. 30)
지난 호에서 북유럽 마을의 장부를 보았듯, 위스테이별내의 장부도 들여다본다. 위스테이별내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2022년 조합 이사장의 기고에 따르면, 형식상 집의 주인이자 운영 주체는 정부가 70%를 투자하고 입주자들의 사회적협동조합이 30% 지분을 가진 부동산투자회사(리츠)다. 공공의 돈으로 짓되, 주민 조합이 주주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구조다.
입주자가 내는 돈은 세 갈래다. 임대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조합 출자금이다. 2020년 보도를 보면 84㎡는 보증금을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월세가 달라지는 선택형이었고, 조합 출자금 4,000만 원은 나갈 때 돌려받는 돈이다. 조합의 서면 답변에 따르면 지금도 출자금은 4,000만 원, 커뮤니티 사용료는 세대당 월 5만 원이고, 보증금은 이사 날짜에 맞춰, 출자금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다음 해 정기총회 뒤(대개 3월)에 돌려받는다(09면).
| 84㎡ 선택형(2020년 보도) | 임대보증금 | 월세 | 입주 때 맡기는 돈 (보증금+출자금) |
|---|---|---|---|
| 보증금 적게 | 3,500만 원 | 66만 3,000원 | 7,500만 원 |
| 중간 | 1억 1,000만 원 | 45만 원 | 1억 5,000만 원 |
| 보증금 많이 | 2억 3,370만 원 | 10만 원 | 2억 7,370만 원 |
낮은 월세 뒤에는 상당한 목돈이 있다. 월세만 보고 싸다고 말하기 전에, 그 목돈을 마련하는 비용과 돌려받는 조건까지 따져야 주거비가 보인다. 임대료는 2년마다 최대 5%까지 올릴 수 있지만, 2023년 보도에 따르면 첫 재계약에서 보증금은 동결, 임대료는 1% 올랐다.
가장 큰 질문은 2028년이다. 8년 의무임대기간이 이때 끝난다. 일반 민간임대라면 분양 전환이나 매각이 논의될 시점이다. 조합은 리츠 지분을 배당받아도 그 이익을 조합원에게 나눌 수 없다. 팔아서 차익을 남길 유인이 약하다는 뜻이다. 올해 2월 국회 포럼에서는 이 모델의 의무기간을 20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이 나왔고, 같은 모델의 고양 위스테이지축 주민들은 20년 장기임대 전환을 목표로 국토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안과 목표는 확정된 권리가 아니다. 별내 조합은 서면 답변에서 조합원 약 83%가 12년을 더한 20년 임대로의 전환을 원한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09면).
자료: 한국아파트신문 손병기 기고(2022. 9. 1) · 아주경제(2020. 6. 25; 금액은 당시 모집 기준이며 현재 조건과 다를 수 있음) · 브라보마이라이프(2023. 11. 30) · 뉴스핌(2026. 2. 11) · 경향신문(2025. 8. 11; 지축 사례)
공개 자료로는 알 수 없는 것을 조합에 서면으로 물었다. 답변은 조합의 뜻을 살려 줄이지 않고 싣는다. 답변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이상우 상임이사(2026. 9. 29).
Q1입주 전 워크숍에서 나온 의견 가운데, 실제 공간이나 운영에 반영된 대표적인 예는 무엇인가요?
Q2위원회나 행사에 자주 나오지 않는 조합원도 편안히 지낼 수 있나요? 일이 몇몇 사람에게 쏠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있나요?
Q3나이 든 조합원, 몸이 불편해진 조합원을 위해 이웃과 조합이 하는 일, 그리고 지역 돌봄·의료와 연결되는 길이 있나요?
Q4지금 새로 입주한다면 보증금·월세·출자금·커뮤니티 사용료는 어떻게 되나요? 나갈 때 출자금은 언제, 어떻게 돌려받나요?
Q52028년 의무임대기간이 끝난 뒤를 조합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지금은 입주 대기를 받지 않는다. 조합 홈페이지에 그렇게 공지돼 있고(2026년 9월 확인), 조합도 2028년까지의 일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답했다. 궁금한 것은 임대관리센터(070-7791-7791)에 문의한다. 먼저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를 읽어 보면 내가 바라는 공동생활의 정도와 맞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서울 금천구 · 홀몸어르신의 집
보린주택의 이름을 따라 금천구의 공개 자료를 살펴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방의 크기보다 집 안팎의 거리다. 자기 방과 부엌이 있고, 그 바깥에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사진은 3호점 '보린햇살주택'이다. 겉모습은 골목에서 흔히 만나는 작은 공동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동체주택이라는 이름이 약속하는 것은 넓은 집이 아니다. 내 방 문을 닫으면 혼자 지낼 수 있고, 문을 열고 나서면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리가 가까이 있다는 것. 집이 작아도 문밖까지 내 생활이 이어질 수 있다. 작은 방 하나가 이웃과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가 된다.
올해 6월 24일부터 7월 13일까지 받은 신청은 끝났다. 8월 13일 입주자 선정심의를 거쳐 8월 19일 당첨자가 발표됐고, 계약은 9월 29~30일, 입주는 10월 12일~12월 11일 예정이다. 이 일정은 새 신청을 받는 기간이 아니다.
6월 모집 3세대의 임대보증금은 1,026만~1,245만 원, 월 임대료는 5만 7,300~10만 3,500원이었다. 금천구는 시세의 약 3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보증금의 90% 범위에서 최대 2,000만 원까지 연 2% 융자를 안내했는데, 이는 갚아야 하는 대출이다. 접수처는 거주지 동주민센터였다.
새로 알아보는 독자는 금천구 고시공고에서 '보린주택'을 검색하고, 복지지원과(02-2627-1981)에 다음 모집과 신청 자격을 확인하면 된다. 사진은 3호점의 모습이고 위 금액은 별도 모집 공고의 수치다. 사진 속 집을 그 금액에 지금 계약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지 않았으면 한다. 관리비와 공과금, 건강 상태가 달라졌을 때 받을 수 있는 지원도 함께 물어볼 일이다.
자료: 금천구청 복지지원과 서면 회신(2026. 9) · 금천구 보도자료(2026. 6. 23)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2015. 11. 3)
서울 마포구 · 열한 집의 작은 공동체
마포 성산동의 더불어 숲 성산(녹색친구들 성산)은 성산로6길의 작은 주택가에 들어선 11세대 집이다. 2층과 3층에 원룸과 투룸이 네 집씩, 4층에 테라스가 딸린 복층 세 집이 있다. SH가 땅을 내놓고, 사회적기업 녹색친구들이 그 땅을 빌려 건물을 짓고 운영해 온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다. 짓는 돈에는 시민의 손도 보태졌다. 오마이컴퍼니의 첫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자 43명이 1억 360만 원을 모았고, 2017년 5월 19일 입소식이 열렸다.
2017년 6월 한겨레 보도에서 입주민 김진희 씨는 이전 원룸에 비해 주거비 부담이 줄고 주거환경이 나아졌다고 전했다. 첫 주민 모임에서는 텃밭과 벼룩시장, 독서 모임, 지역 예술가에게 공간을 빌려주는 구상이 오갔다. 그 뒤의 생활은 1층에 남았다. 2019년 한국사회주택협회가 소개한 자료를 보면, 1층 16평 공간에 쌀을 도정해 팔고 점심과 저녁을 내는 '동네정미소성산'이 들어섰고, 한 달에 한 번은 이곳이 입주자 모임 자리가 됐다. 개별 주택 말고도 커뮤니티 공간과 옥상마당, 함께 쓰는 나눔카를 갖췄다.
건물은 4층이다. 1층은 함께 쓰는 공간이고, 2층과 3층에 투룸과 원룸이 두 집씩, 4층에는 테라스가 딸린 복층 세 집이 있다. 가장 작은 원룸이 14.82㎡, 가장 큰 복층이 37.92㎡다.
| 방 유형 | 전용면적 | 임대보증금 | 월 임대료 |
|---|---|---|---|
| 원룸 4호 | 14.82~15.39㎡ | 5,571만 3,000원 | 9만 9,490원 |
| 투룸(3베이) 4호 | 30.38~35.28㎡ | 1억 1,986만~1억 3,642만 원 | 21만 4,040~24만 3,600원 |
| 복층(테라스) 3호 | 33.82~37.92㎡ | 1억 1,599만~1억 4,548만 원 | 24만 3,130~32만 2,180원 |
표 · 서울시 사회주택플랫폼 '녹색친구들성산' 입주현황(2023. 4. 14 수정). 관리비는 0원으로 게시돼 있다. 이 돈을 돌려줄 책임이 임대인인 운영사에 있다는 점이 15면과 16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운영사 녹색친구들은 2017년 7월, 4층 401호의 모습을 블로그에 올렸다. 401호는 4층 복층 세 집 가운데 가장 넓은 37.92㎡다. 흰 벽과 나무 바닥, 큰 창이 있는 아래층에서 계단을 오르면 위층이 하나 더 있고, 집마다 따로 쓰는 테라스가 딸려 있다. 사진 속 방은 아직 살림이 들어오기 전이라 비어 있다.
플랫폼 입주현황(2023. 4. 14 수정)에 적힌 이 집의 임대조건은 보증금 1억 4,547만 9,000원, 월 임대료 25만 9,780원이다. 볕이 잘 드는 방만큼이나, 이 목돈을 계약이 끝났을 때 누가 돌려주는지가 이 집의 조건이었다. 다음 면은 그 돈이 어디에 기대고 있었는지의 이야기다.
성산은 서울시가 2015년 처음 사업자를 고른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가운데 하나다. 구조는 이렇다. 사업자가 땅을 찾아 신청하면 서울시(SH)가 그 땅을 사서 30년, 길게는 40년 동안 빌려준다. 토지 임대료는 감정가의 연 1% 수준이고 2년에 2% 넘게 오르지 않는다. 사업자는 그 땅에 집을 지어 시세 80% 이하로 임대하고, 주거 면적의 10~20%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둬야 한다. 건축비는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융자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받은 은행 대출로 사업비의 90%까지 마련할 수 있다.
그림 ·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돈과 책임의 흐름. 2019 서울시 사회주택 아카데미 자료와 오마이컴퍼니 게시물을 바탕으로 편집부가 그렸다.
이 구조의 부담은 일찍부터 지적됐다. 같은 아카데미에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진남영 원장은 사업자가 오래 운영할수록 부담이 커지고 자산을 쌓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땅의 가치는 해마다 오르지만 사업자 몫인 건물은 해마다 낡고, 운영 기간 안에 건축비를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7년 뒤의 보증금 미반환을 그때 예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공공이 땅을 내고 사업자가 빚을 내 짓는 구조에서, 입주자가 맡긴 보증금은 결국 사업자의 재무에 기댄다는 점은 그때도 보였다.
2026년 6월, 이 집을 지어 운영해 온 녹색친구들의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보도됐다. 성산은 녹색친구들의 SH 토지임대부 사업장에 포함된다. 다만 운영사 전체의 피해 규모를 성산 한 곳의 피해액으로 옮겨 쓸 수 없고, 이번에 확인한 자료만으로 성산 각 세대의 반환 상황을 단정할 수도 없다.
상황은 그 뒤로도 나빠졌다. 한국사회주택협회는 6월 23일 사과문을 내고 녹색친구들 등 세 곳을 회원에서 제명했다. 8월 보도에 따르면 녹색친구들은 4대보험료 약 6,500만 원을 체납했고 자산에 대한 강제 처분이 진행 중이다. 이번 취재에서 서울시 사회주택플랫폼에 적힌 운영사 전화와 이메일, 카카오톡 상담방으로 연락해 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9월 29일 플랫폼의 성산 입주현황에는 열한 집 모두 '입주불가능'으로 표시돼 있다.
8월 서울시의회 회의록에는 7개 사업장 35세대의 사고 규모와, 그중 26세대에 먼저 지급한 조치가 함께 적혀 있다. 제도에 빈틈이 있었다는 사실과 아무 조치도 없었다는 주장은 다르다. 그래도 성산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함께 사는 집에서 이웃과 만든 기억은 소중하지만, 계약이 끝났을 때 내 돈을 돌려받는 일도 그 생활의 일부다.
열한 집이라면 큰 아파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얼굴을 익히게 될 것 같다. 마주치는 사람이 적은 만큼 친해질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서로 맞지 않을 때 피할 거리가 짧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은 공동체일수록 참여하지 않을 자유와 공용공간을 쓰는 약속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약속만큼, 맡긴 돈을 누가 어떻게 지키는지도 분명해야 한다.
자료: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2016. 10. 13) · 오마이컴퍼니, 녹색친구들 제1호 사회주택 성산점 입소식(2017. 5. 22) · 한겨레(2017. 6. 22) · 2019 서울시 사회주택 아카데미 기초과정 자료집(진남영, 채준배, 2019. 3. 26)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사회적 주택 현장방문」 사진(2017. 9. 13, 국토교통부 사용 허락) · 녹색친구들 공식블로그(2017. 7. 6) · 서울시 사회주택플랫폼 '녹색친구들성산'(2026. 9. 29 확인) · 오마이뉴스(2026. 6. 19; 6. 23; 8. 6) · 서울특별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회의록(2026. 8. 11)
성산의 얼개는 지난 호에서 본 덴마크의 비영리 사회주택(almene boliger)과 닮았다. 공공이 땅을 거들고, 이익을 남기지 않는 사업자가 집을 짓고, 원가에 가까운 임대료를 받고, 주민이 함께 쓰는 공간을 둔다. 그런데 한쪽은 백 년 가까이 이어지고 한쪽은 아홉 해 만에 운영사가 무너졌다. 같은 그림의 어디가 달랐는지 다섯 갈래로 나눠 놓아 본다.
| 더불어 숲 성산 (서울 토지임대부) | 덴마크 almene 주택 | |
|---|---|---|
| 집의 주인 | 직원 몇 명의 민간 회사 한 곳. 땅은 SH, 건물은 회사 | 주민이 이사회를 뽑는 비영리 주택조직. 땅과 건물을 함께 가진다 |
| 짓는 돈 | 은행 대출과 기금 융자로 최대 90%, 나머지와 운영 자금은 회사와 입주자 보증금 | 입주자 부담금 2%, 지방정부 기초자본 대출 8~12%, 장기 저당대출 86~90%. 국가가 상환을 지원 |
| 맡기는 돈 | 보증금 5,571만~1억 4,548만 원. 돌려줄 책임은 회사 한 곳 | 사업비 기준 2% 안팎. 반환 규칙이 법에 있다 |
| 회계의 벽 | 성산·창천·행운·대조·연남을 한 회사가 운영. 한 집의 돈이 다른 사업장으로 갈 수 있는 구조 | 사회주택법 16조: 단지마다 다른 단지와 조직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 |
| 위기 때 | 사고가 난 뒤 선지급·매입을 협의. 그 사이를 협회 회원사 모금이 메움 | 전국주택기금(LBF)에 재정난 단지를 위한 특별 운영지원 절차. 조직·지자체·금융기관이 함께 투입 |
첫째, 이익을 남기지 않는 것과 손실을 견디는 것은 다르다. 성산의 사업자는 시세 80% 이하로 임대하고 면적의 10~20%를 커뮤니티 공간으로 내놓으면서, 30~40년 안에 건축비를 회수해야 했다. 2019년 진남영 원장이 지적한 대로 땅값은 공공 몫으로 오르고 건물은 회사 몫으로 낡는다. 덴마크도 원가임대라 남는 돈은 없지만, 대출은 최장 40년에 걸쳐 갚고 국가가 상환액 일부를 지원한다. 임대료와 비용 사이의 부족분을 누가 메우는지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둘째, 입주자의 돈이 회사의 운영 자금이 됐다. 성산 입주자는 1억 원 안팎을 회사에 맡겼고, 2024년 평가에서 보증보험 미가입과 반환준비금 부족이 지적됐다. 땅과 건물의 주인이 달라 보증보험에 들기도 어려웠다. 덴마크 입주자가 맡기는 돈은 사업비의 2% 안팎이다. 회사가 무너져도 입주자가 잃을 돈의 크기가 다르다.
셋째, 한 집의 장부를 지키는 벽이 없었다. 성산 자체의 수지가 어땠는지는 공개된 결산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2025년 12월 평가에서 회사 전체가 완전자본잠식으로 판정됐을 때, 성산의 보증금도 함께 위험해졌다. 덴마크는 단지마다 회계를 법으로 독립시켜 한 단지의 손실이 다른 단지의 돈을 끌어 쓰지 못하게 한다.
넷째, 무너지기 전에 받쳐 줄 절차가 없었다. 2022년 8월 서울시의 신규 공급이 멈춘 뒤에도 회사는 홀로 운영을 이어 갔고, 사고가 난 뒤에야 선지급과 매입이 논의됐다. 덴마크 전국주택기금에는 재정난에 빠진 단지가 신청하는 특별 운영지원 절차가 있다. 모든 손실을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지만, 누가 언제 개입하는지가 정해져 있다.
다섯째, 규모다. 열한 집을 운영하는 회사 한 곳은 공실 몇 집, 금리 몇 퍼센트에도 흔들린다. 덴마크의 주택조직은 수천 호를 묶어 위험을 나눈다. 작은 공동체의 장점을 살리려면, 재정만큼은 큰 단위로 묶어 두는 설계가 따로 필요했다.
덴마크를 "국가가 빚을 대신 갚아 주는 나라"로 읽으면 안 된다. 덴마크도 임대료가 비용에 못 미치면 임대료를 올리고, 기금의 지원은 조건을 붙여 심사한다. 스웨덴의 지방정부 소유 주택회사, 핀란드의 국가 지원 장기 금융도 덴마크와 같은 제도가 아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하나다. 집을 오래 지킬 돈의 책임을 입주자 한 사람이나 작은 회사 한 곳에 떠넘기지 않는다는 것. 성산은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자료: 지난 호 보고서 「이 집은 누가 지었나」(덴마크 LBF 재정 안내·주제통계 2025) · 덴마크 사회주택법(almenboligloven, 2026) 16조 · LBF 특별 운영지원 안내 · 2019 서울시 사회주택 아카데미 자료집 · 오마이뉴스(2026. 6. 19; 6. 23) · 서울특별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회의록(2026. 8. 11). 덴마크 제도는 비교를 위한 요약이며, 개별 단지의 계약과 보증은 각각 확인한 것이 아니다.
앞 면의 다섯 갈래는 공개 자료만으로 짚은 것이다. 성산의 실패를 소논문 수준으로 확정하려면 네 가지 자료가 더 필요하다. ① 성산점의 연도별 수입·지출과 대출 명세 — 월세로 어느 비용까지 감당했는지. ② 보증금 총액과 반환준비금 잔액, 반환 내역 — 반환 재원이 실제로 얼마나 부족했는지. ③ 본사·다른 사업장과의 자금 거래 — 성산 자체의 적자인지, 회사 전체의 부실이 옮겨 온 것인지. ④ SH 평가와 후속 조치 기록 — 위험을 언제 알았고 어떤 시정 요구와 이행 확인이 있었는지.
운영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 지금, 이 자료에 이르는 길은 서울시와 SH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다. 편집부는 청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답을 받으면 다음 호에 싣는다.
위스테이별내는 주민이 자기 생활을 만드는 데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보린은 혼자 사는 사람 곁에 어떤 지원이 놓여야 하는지를, 성산은 그 생활을 오래 지켜 줄 돈의 책임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덴마크와 견주어 다시 묻게 했다. 세 곳을 한 표에 놓아 본다.
| 집 | 누가 꾸리나 | 입주자가 맡기는 돈 | 9월 확인한 입주 상황 |
|---|---|---|---|
| 위스테이별내 | 리츠(정부 70·조합 30) 소유, 주민 사회적협동조합이 마을 운영 | 보증금·출자금(환급) | 입주 대기 접수 안 함. 임대관리센터 070-7791-7791 |
| 보린주택 | 공공 매입임대, 금천구가 입주·생활 지원 | 보증금(융자 가능) | 올해 모집 종료. 금천구 복지지원과 02-2627-1981 |
| 더불어 숲 성산 | SH 토지, 민간 운영사가 건축·운영 | 보증금(반환 문제 보도) | 운영사 기능 정지, 플랫폼상 11호 모두 입주불가. 공공 매입·관리 이관 논의 중 |
전화를 걸기 전에, 내가 바라는 하루를 적는다밥을 가끔 함께 먹고 싶은지, 위원회 일을 맡아도 좋은지, 아플 때 가까운 곳에 도움을 청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혼자 있어야 편안한 시간도 함께 적어 보자.
집을 보게 되면, 내 방에서 공동공간까지 직접 걷는다계단과 문턱, 쉬어 갈 의자, 보행 보조기를 쓰게 되어도 오갈 수 있는지. 사진 속 공간이 실제로 언제 열리고 누가 관리하는지도 살핀다.
맡기는 돈과 매달 쓰는 돈을 따로 적는다보증금과 출자금처럼 돌려받아야 할 돈과, 월세·관리비·공동체 운영비처럼 쓰는 돈은 성격이 다르다. 말로 들은 설명은 계약서와 규약에서 다시 확인한다.
이 특집의 근거 자료 — 세 곳의 건축·운영 재원을 비교한 연구 원고 「함께 늙어갈 집은 누가 짓고 누가 유지하는가」와 북유럽 사회주택 재원 보고서 「이 집은 누가 지었나」 — 는 홈페이지(www.myeongrang.org)에 공개한다. 전체 출처와 확인일도 함께 싣는다. 우리 동네에 이런 집이 있다면 justice_park@kakao.com으로 알려 주시길.
작년 8월,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하버드 대학교에 갔다. 하버드 캠퍼스 투어를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들이 있다. 먼저 하버드 야드를 걷고, 오래된 건물들을 둘러보고, 존 하버드 동상의 황금빛 구둣발을 만져보는 것도 그중 하나다. 동상의 발을 만지면 하버드에 갈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어 동상 앞에는 발을 만져보려는 관광객들로 줄을 선다.
나도 하버드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다. 오래된 건물을 보고 학생들이 오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버드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을 직접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미술관을 발견했다. 바로 하버드 아트 뮤지엄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하버드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냥 산책하다가 발견했고, 시간이 있으니 한번 들어가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하버드 아트 뮤지엄은 서로 다른 세 개의 미술관이 합쳐진 곳으로, 여러 층에 걸친 50여 개의 전시실에서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예술품과 역사적 자료를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여러 층을 오르내리며 전시를 보다 보니 한두 시간으로는 다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반 고흐와 모네, 피카소, 호안 미로처럼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고,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유명한 작품이 꽤 있네' 정도로 생각했다가 한 층, 한 층 올라갈수록 많은 볼 것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회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진, 조각, 유물, 동양의 예술품까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하버드라는 대학 안에 이렇게 많은 예술품과 역사적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내 발길을 오래 붙잡은 것은 현대미술이었다. 특별히 무엇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다. 작품 앞에 서서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색과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작품도 있었다. 무엇을 말하는 작품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괜찮았다. 마음에 들면 조금 더 보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그렇게 내 속도로 작품을 만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작품을 보다 보니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바로 불교와 관련된 자료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단순히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교를 하나의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매우 깊이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층의 상당 부분에서 불교와 관련된 작품과 자료를 만날 수 있는데, 단순히 오래된 유물을 전시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흔적이 느껴졌다. 하버드에서 동양의 불교와 역사, 예술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니 하버드라는 대학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미술관은 작품을 보는 곳이기도 했지만,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이 미술관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참 편했다. 모든 전시를 다 봐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고,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 봐야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모든 전시는 무료로 볼 수 있고, 한국어로 작품 설명도 확인할 수 있어서 더 편했다. 낯선 나라의 큰 미술관인데도 이상할 만큼 친숙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한 곳에 갈수록 '여기까지 왔으니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봐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잠시 그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보너스 같은 공간이라서였을까?
하버드 아트 뮤지엄에서 다음과 같은 세 문장을 만났다. Be inspired. Be curious. Be here. 처음에는 그저 미술관에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그곳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이 세 문장과 닮아 있었다. 좋은 작품을 만나 마음이 움직였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며 궁금해졌고, 또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결국 이곳에 두 번이나 갔다. 처음 방문했을 때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생겼고, 무엇보다 그 공간에 다시 가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누군가 하버드에 간다면 캠퍼스를 천천히 걸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오래된 건물과 도서관, 곳곳에 남아 있는 하버드의 이야기를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를 더 권하고 싶다. 하버드 아트 뮤지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예술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그 많은 작품 앞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싶은 만큼 생각할 수 있었다. 나에게 하버드 아트 뮤지엄은 우연히 발견했지만, 다시 찾고 싶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두 번 갔다.
햄스트링·엉덩이 근육을 깨우는 '리스파인 운동'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일하다 보면 허리가 뻐근하고 엉덩이부터 허벅지 뒤쪽까지 당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허리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오래 앉아 있는 자세에서 비롯된 엉덩이와 다리 주변의 움직임 저하가 허리 부담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
물론 허리 통증의 원인이 항상 특정 근육 하나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요통은 다양한 신체적·심리사회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운동과 일상생활 속 활동 회복이 중요한 관리 방법이라고 설명한다(WHO, 2023).
앉은 자세에서는 엉덩관절이 굽혀진 상태로 오래 유지된다. 이때 햄스트링은 긴장하고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으며, 대둔근과 소둔근 역시 충분히 수축하지 못한 채 눌려 있게 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오래 앉아 있는 생활은 신체활동 부족과 근육 사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장시간 앉아 있는 습관과 요통의 관련성을 살펴본 연구들도 보고되어 있다. 다만 오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 모든 허리 통증을 설명할 수는 없고, 자세·운동량·근력·스트레스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Chen 외, 2009; WHO, 2020).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허리 근육이 계속 긴장하고,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의 통증이 허리 통증과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허리만 강하게 마사지하거나 꺾기보다, 허리와 연결된 엉덩이·다리 근육을 함께 회복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
리스파인 운동은 특정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근육의 버티는 힘을 기르는 정적 근지구력 운동이다. 큰 동작이나 무거운 중량보다 낮은 강도의 자세를 일정 시간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움직임의 범위와 강도를 조절하기 쉬워 관절에 갑작스러운 충격이 적고, 운동 초보자나 일반적인 근력운동이 어려운 사람의 재활운동으로 활용하기 좋다. 약해진 근육을 단계적으로 활성화하고 자세 안정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둔다.
다만 통증이나 저림을 참고 무리하게 지속해서는 안 되며, 증상이 나타나면 운동을 중단하고 전문가의 평가를 받는 것이 좋다.
참고문헌 · Chen S-M, Liu M-F, Cook J, Bass S, Lo SK. Sedentary lifestyle as a risk factor for low back pain: a systematic review. International Archive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82: 797–806, 2009. ·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Guidelines on Physical Activity and Sedentary Behaviour, 2020. · World Health Organization. Low back pain (fact sheet), 2023.
왼쪽 다리를 움직이는 기준으로 정리한 두 가지 동작이다. 다리를 높이 올리기보다 허리와 골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주의할 점 — 발끝만 억지로 비틀지 않으며, 내회전 각도는 편안한 범위에서 조절한다. 다리를 올리려고 허리를 젖히거나 골반을 함께 돌리지 않는다.


주의할 점 — 다리를 뒤로 세게 차거나 반동을 주지 않는다. 지지하는 오른쪽 무릎이 안쪽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다리를 높이 올리기 위해 허리를 과하게 꺾지 않는다.
자세를 30초~1분 유지하는 것을 1세트로 하여 각 동작을 2~3세트 반복한다. 통증이 없고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시간을 조절한다. 바퀴가 없고 미끄러지지 않는 튼튼한 의자를 쓰고, 숨을 참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유지 시간과 반복 횟수는 개인의 상태와 지도 기준에 맞춘다.

7월 끝자락, 평창동 언덕을 올랐다. 벽돌 담을 끼고 이어지는 좁은 골목은 가파르고, 하늘은 한여름답게 높았다. 그 꼭대기쯤에 흰 벽의 집이 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이 1988년부터 머물며 그림을 그린 집이다.
1976년 서울 현대화랑의 개인전에서 물방울 그림 서른 점이 첫날 모두 팔린 뒤,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작가는 머물 곳과 작업실을 찾다가 이곳에 집을 지었다. 1988년부터는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살았다. 생전에 작업실을 공개하고 싶다는 뜻을 남겼고, 종로구가 그 집을 고쳐 올해 5월 '김창열 화가의 집'으로 문을 열었다. 입구 벽돌에 새긴 문구가 이 집의 성격을 한 줄로 말한다. "김창열 화백의 예술과 삶의 철학을 담아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집."
경사지에 앉은 집이라 입구는 길과 같은 높이에 있고, 관람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이어진다. 지상 2층, 지하 2층. 설계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지은 플랫폼 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창이 큰 아카이브실에서는 산자락과 평창동의 지붕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흰 계단을 한 층 더 내려가면 개관전 포스터가 기다린다. 《물방울의 흔적(Remnants of Water Drops)》.
맨 아래층은 작가가 실제로 쓰던 작업실이다. 둥근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 아래 넓은 책상과 책장, 화구를 실은 카트가 그대로 놓여 있다. 종로구는 이곳을 "화백의 마지막 손길이 닿아 있던 모습에 가깝게" 되살렸다고 설명한다. 카트 위 붓통에 꽂힌 붓들, 한자가 빼곡한 붉은 캔버스. 그림이 걸린 전시장보다 오히려 이 방에서 한 사람의 시간이 더 오래 느껴진다.
프랑스로 건너간 김창열은 파리 근교 팔레조의 마구간을 아틀리에 겸 숙소로 썼다. 가난한 시절 캔버스를 재활용하려고 뒷면에 물을 뿌려 두었다가,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을 보고 그것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 낸 〈밤에 일어난 일〉이 그 첫 물방울이다. 그 뒤 반세기, 물방울은 캔버스 위에서, 신문지 위에서, 천자문 위에서 맺히고 흘렀다.
전시는 회화 19점, 판화 4점, 드로잉 1점, 모두 24점으로 단출하다. 종이를 눌러 물방울을 떠낸 판화 〈눈〉 앞에서는 물감 없이도 물방울이 맺힌다는 게 새삼스러웠고, 창 아래 걸린 물방울 그림은 바깥 소나무와 한 화면처럼 읽혔다. 큰 미술관의 회고전과 달리 이 집에서는 그림과 그림을 그린 방, 그 방에서 보이던 풍경이 한 동선 안에 있다. 작품을 본다기보다 한 화가의 하루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다.
지난 두 회에서 우리는 바흐가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는 법과, 슈만·브람스가 연인의 이름을 밀봉하는 법을 배웠다. 규칙은 그대로다 — 독일식 음이름에서 A부터 G까지는 그대로 음이 되고, B는 시♭, H는 시, Es(=S)는 미♭, As는 라♭. 음이 안 되는 철자는 조용히 건너뛴다. 그런데 이름을 숨겨야 했던 이유가 사랑만은 아니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국가가 정해 주던 시대, 한 작곡가에게 이 암호는 '이것은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chostakowitsch, 독일식 표기)는 자기 이니셜 네 음 D-Es-C-H(레-미♭-도-시)를 평생의 서명으로 삼았다. 스탈린이 죽은 1953년의 교향곡 10번에서 이 서명은 폭풍처럼 반복되고, 1960년의 현악 4중주 8번은 아예 이 네 음으로 시작해 이 네 음으로 끝나는 음표 자서전이다. 검열관이 읽을 수 없는 언어로, 그는 매번 자기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런데 교향곡 10번 3악장에는 서명이 하나 더 숨어 있다. 호른이 열두 번이나 외쳐 부르는 다섯 음 —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엘미라 나지로바의 이름이다. 표기법을 두 개나 섞어 만든 공들인 암호다. 엘미라(Elmira)의 철자를 프랑스식 계이름과 독일식 음명에서 하나씩 빌려 E-La-Mi-Re-A로 조립했다. 마흔여섯의 작곡가가 스물다섯의 제자에게 품은, 편지로도 다 말하지 못한 마음 — 한 악장 안에서 자신의 서명(D-Es-C-H)과 그녀의 이름이 부르고 답하듯 마주 본다.
교향곡 10번(1953) 3악장·4악장 — 서명이 악장을 뒤덮고, 3악장에서 엘미라 모티프와 마주 본다. QR: 3악장부터 · hr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실황(2013, 스크로바체프스키 지휘)
현악 4중주 8번(1960) — 다섯 악장 전체가 DSCH로 시작해 DSCH로 끝난다. "나 자신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는 편지가 남아 있다. QR: 전곡 · 예루살렘 콰르텟
교향곡 10번 3악장 — DSCH와 엘미라가 마주 보는 악장 · hr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스타니스와프 스크로바체프스키 지휘, 알테 오퍼 프랑크푸르트 2013 실황(3악장 30:12부터)
현악 4중주 8번 — DSCH로 시작해 DSCH로 끝나는 곡 · 예루살렘 콰르텟
가장 극적인 개봉은 알반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1926)이다. 공식 헌정은 스승격인 쳄린스키에게. 그런데 반세기가 지나 음악학자 조지 펄이 베르크가 몰래 주석을 달아 연인에게 건넨 악보 한 부를 찾아내면서 진짜 수신인이 드러났다 — 유부녀였던 한나 푹스. 곡 전체에 얽혀 있던 네 음 A-B-H-F는 두 사람의 이니셜(Alban Berg + Hanna Fuchs)이었고, 악장 곳곳의 숫자마저 두 사람을 뜻하는 암호였다.
청중이 50년 동안 들어 온 것은, 알고 보니 밀봉된 러브레터였던 셈이다. 쇼스타코비치가 국가 앞에서 자기 이름을 지키려고 암호를 썼다면, 베르크는 세상 앞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지키려고 썼다. 숨긴 이유는 정반대인데 방법은 같다 — 음이 되는 철자만 남기고, 나머지는 건너뛴다. 이 문법이 수백 년을 살아남은 이유를 다시 적어 둔다. 문법은 하나인데, 담을 수 있는 마음은 전부이기 때문이다.
들어 보기 — 베르크 「서정 모음곡」
조지 펄이 찾아낸 주석 악보에는 마지막 6악장에 숨은 노랫말(보들레르의 시 「심연에서 부르짖었나이다」)이 적혀 있었다. 그 노랫말을 소프라노가 실제로 부르는 연주다. 밀봉이 풀린 러브레터를 6악장에서 듣는다. QR: 전곡 · 링컨센터 실내악협회
베르크 「서정 모음곡」 — 6악장의 숨은 노랫말을 소프라노가 부르는 판 · 링컨센터 실내악협회
규칙 A~G는 그대로, B=시♭ · H=시 · S(Es)=미♭ · As=라♭ · 나머지 철자는 건너뛴다 · 막히면 프랑스식 계이름(Do·Re·Mi·Fa·Sol·La·Si)에서 빌려 온다
참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Op.93(1953)·현악 4중주 8번 Op.110(1960) — DSCH 모티프와 3악장의 엘미라 모티프 · 베르크 「서정 모음곡」(1926)과 George Perle의 주석 악보 연구(1977). 엘미라 모티프의 해석은 나지로바와 주고받은 서신 연구에 근거한다.

나의 브롬톤.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브롬톤은 13대쯤 된다. 굳이 '쯤'이라고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맥시멀리스트에게 정확한 숫자는 언제나 조금 민망한 법이니까.
나의 첫 브롬톤은 2005년 M6R이다. 그때 내 M6R에는 허브 다이나모가 장착되어 있었다. 앞바퀴 허브가 돌면서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불을 밝히니, 배터리 걱정 없이 밤길을 달릴 수 있었다. 색상은 레이싱 그린. 영국 모터스포츠의 상징색에서 이름을 따온, 참 브롬톤다운 초록이다. 지금은 핸들바를 P형으로 바꿔 P6R로 튜닝한 모습이다. (이 녀석은 언젠가 따로 소개할 날이 오겠지.)
아, 그 전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나는 2003년, 게리 피셔의 MTB 타사자라로 뭔가 프로페셔널한 바이크 세계에 입문했다. 이후 스캇 스케일과 스트라이다를 거쳐 다혼, 버디, 브롬톤, 몰튼, 그리고 비앙키와 스페셜라이즈드의 로드차까지 — 미니벨로와 MTB, 로드차를 오가며 신나게 라이딩을 했다. 바퀴 크기가 달라지면 같은 길도 전혀 다른 길이 된다는 걸, 그렇게 자전거를 바꿔 타며 배웠다.
지금은 여러 이슈로 가끔 브롬톤이나 살방살방 타는 정도지만, 이렇게 여러 자전거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브롬톤을 선택하겠다. 브롬톤은 모든 면에서 나에게 완벽한 자전거니까.
브롬톤을 전용 캐리어에 실어 제주도를 한 바퀴, 아니 반 바퀴, 반의 반 바퀴? 돌았던 기억이 있다. 캐리어를 열고 자전거를 펼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출발선이 된다. 접을 수 있는 자전거만 줄 수 있는 자유다.
마음이 심난한 날에는 그날 기분에 맞게 한 대를 골라 타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열세 대쯤 가진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조금 사치스러운 위로다.
이런 브롬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첫인사 삼아, 브롬톤이 어떤 자전거인지부터 적어 둔다.
브롬톤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접이식 자전거다. 1975년, 엔지니어 앤드루 리치가 브롬턴 오라토리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자기 집 방에서 첫 시제품을 만들었고, 이름도 그 동네에서 따왔다. 지금도 런던에서 만든다.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만 1,200개가 넘는다.
브롬톤의 핵심은 접는 방식이다. 뒷바퀴를 안쪽으로 접어 넣고, 앞바퀴를 옆으로 꺾어 붙이고, 핸들 기둥을 내리면 세 번의 동작, 20초가 안 되는 시간에 작은 꾸러미가 된다. 16인치 바퀴 두 개가 그 꾸러미 안에 나란히 들어앉는다. 그래서 지하철에도, 버스 짐칸에도, 제주행 캐리어에도 들어간다.
접기를 반만 하는 방법도 있다. 뒷바퀴만 안쪽으로 접어 넣으면 자전거가 스스로 선다. 가게 앞에 잠깐 세울 때, 강변에서 숨을 고를 때 쓰는 이른바 '주차 자세'다. 아래 세 장은 펼침에서 반 접음, 완전히 접기까지의 순서다. 세 대 모두 필자의 브롬톤이고, 색이 다 다르다.
첫 글자 — 핸들바. S(낮고 곧은 형), M(중간 높이), H(높은 형), P(여러 자세로 잡는 형).
숫자 — 기어 수. 1·2·3·6단. 6단은 3단 내장 허브와 2단 변속을 합친 것이다.
끝 글자 — 채비. E(흙받이 없음), L(흙받이), R(흙받이+뒤 랙).



| 옛 이름 (2021년형까지) | 지금 이름 (2022년형부터) | |
|---|---|---|
| 짜임 | 핸들바 + 기어 수 + 채비, 글자 세 개 | 라인 + 기어 이름 + 핸들바 높이 |
| 핸들바 | S · M · H · P | Low · Mid · High (P형은 2019년에 단종) |
| 기어 | 숫자로 1 · 2 · 3 · 6 | Urban 2단 · Utility 3단 · Explore 6단 → 2025년 12단 추가 |
| 채비 | E · L · R | 흙받이·앞 캐리어 블록이 기본이 되며 글자가 빠짐 |
| 소재 | 강철, 티타늄 부품은 뒤에 -X | C(강철) · P(강철+티타늄) · T(티타늄) · A(입문형) 라인 |
| 예 | M6L | C Line Explore Mid |
바꾼 까닭을 브롬톤은 이렇게 설명했다. 1,600만 가지 조합을 엔지니어나 애호가만 읽을 수 있는 약어로 부르니, 처음 사는 사람이 고르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나의 'M6R'은 이제 사전에만 남은 이름이 됐다.
브롬톤은 생김새가 하나다. 대신 색과 부품을 골라 꾸릴 수 있어서, 모아 놓고 보면 결국 색으로 구분된다. 마음이 심난한 날 기분에 맞게 골라 탄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앞 면들의 민트, 라임, 분홍, 로우라커에 이어 나머지 다섯 대를 모았다. 한정판도 있고, 스무 해 전의 첫 브롬톤도 있다.





출처: Brompton 공식 홈페이지 「History」(1975 시제품·브롬턴 오라토리·20초 이내 접이) · Wikipedia 「Brompton Bicycle」(부품 1,200개 이상·16인치 349 규격) · A to B 「The 2005 Brompton」(로우라커 마감) 및 Brompton Junction Melbourne 「Brompton Model Codes」(모델명 체계) · Brompton 「Racing Green」 색상 소개 · Brompton 「Brompton x CHPT3 History」(2019 V2) · Bikerumor 「Brooks & Brompton x Team GB Tokyo 2020」 · Brompton 「Flame Lacquer」 제품 소개 · Bikerumor 「Brompton re-launches classic folding bike range」(2021.10) · Brompton Junction Melbourne 「C, P & T Lines Explained」 · Bicycle Retailer(2025.3, C 라인 12단)
여름이 물러나는 9월, 이번 달 장바구니에는 둥근 양배추 한 통이 담겼다. 밥 위에 얹고, 새우와 볶고, 두툼하게 굽고, 돌돌 말아 국물에 끓이는 네 접시의 실험 기록.
재료 양배추 1/4통, 양파 1/4개, 편마늘, 소금, 후추 · 소스 된장 1T, 올리고당 1/2T, 맛술 1/2T, 참기름 약간, 다진 마늘, 통깨

재료 양배추 반 통, 새우 10개, 팽이버섯 한 줌, 다진 마늘, 페퍼론치노, 올리브오일, 굴소스 약간

재료 양배추 반 통, 버터, 소금 두 꼬집, 후추, 레드페퍼, 파마산 치즈 가루

재료 손바닥 크기 양배추 10장, 다진 소고기+돼지고기 200g, 빵가루 1/2컵, 다진 양파 1/2개, 달걀 1개, 소금·후추 약간 · 육수 물 400ml, 멸치 코인육수 1개, 쯔유 2T

강렬했던 자외선이 남긴 칙칙함과 잡티는 비워내고, 계절의 온도를 닮은 그윽한 무드를 채워야 할 9월. 매트했던 여름의 문법을 잠시 내려놓고, 윤기와 깊이감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시점이다.
여름 내내 지친 피부에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리셋'이다. 스킨케어 단계에서는 칙칙한 기운을 걷어내는 브라이트닝과, 아침저녁 쌀바람에 속부터 쩍쩍 갈라지는 피부 갈증을 잠재울 고보습 앰플을 처방해 줄 것. 피부가 목마르지 않도록 탄탄한 수분 길을 열어주는 것이 가을 스킨케어의 핵심이다.
피부 결에 맑은 윤광이 머물기 시작했다면, 이제 메이크업 팔레트를 교체할 차례다. 계절의 변화는 립과 아이 컬러에서 가장 먼저 빛을 발하는 법. 묘하게 감기는 말린 장미와 은은한 뮤트 브라운, 클래식한 테라코타와 고혹적인 플럼 계열까지, 톤 다운된 무드의 컬러들이 얼굴 전체에 스며들도록 자연스럽게 물들여보자.
계절에 따라 스킨케어 루틴을 달리하고, 날씨와 무드에 맞춰 컬러를 골라 쓰는 즐거움.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올가을을 시작해 볼까.


브라이트닝. 여름 자외선이 남긴 칙칙함과 잡티를 걷어낸다.
고보습 앰플. 속부터 갈라지는 갈증을 잠재우고 수분 길을 연다.
톤 다운 컬러. 립과 아이부터, 얼굴 전체에 스며들듯.
지난 호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네 개의 질문 가운데 하나 — 우리도 이웃부터 지을 수 있는가 — 를 이번 호가 받아 들었습니다. 세 개가 남았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가 — 자동화의 시대, 기본소득이라는 오래된 새 질문.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 향유의 문턱과 그 문턱을 넘는 사람들. 예술로 먹고살 수 있는가 — 예술인 고용보험 5년의 성적표. 그리고 이번 호가 남긴 숙제도 있습니다. 성산의 장부를 서울시와 SH에 정보공개로 청구해, 답이 오면 다음 호에 싣습니다. 좋은 질문을 알고 계신 분은 언제든 연구소로 — justice_park@kakao.com
김창열의 물방울에 이어 두 번째 가을은 큐비즘입니다. 피카소와 브라크, 레제와 들로네 — 파리에서 온 그림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봅니다. 「부리의 명랑음악당」 ④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속 '도라벨라'를 풀고, 「스눕독의 여행기」 ③, 「집밥연구소」 with 가을 채소, 브롬톤 두 번째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빨간 호박의 클라이밍」 ②와 「건축 산책」 ③은 필자의 원고가 도착하는 대로 돌아옵니다.